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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망하기 싫으면 위안부 사죄 배상해라” 강일출 할머니
안소영. 김애진기자  |  dokdo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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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03  04: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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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버지니아 페어펙스카운티 정부청사에서 열린 위안부기림 평화공원 개막식에 초청된 위안부희생자 강일출(86) 할머니는 3년간 위안소생활을 하다가 일제가 산채로 태워죽이려하는 위기를 뚫고 극적인 탈출로 생환한 주인공이다. 행사도중 방생된 나비들의 날개짓처럼 덩실덩실 ‘나비춤’을 추기도 한 강할머니는 “일본이 망하기 싫다면 진정으로 반성과 사죄를 하고 배상을 하여 과거의 반인륜적 범죄를 용서받아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할머니는 제막식 다음날 함은선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의 호의로 워싱턴 시내 명소를 둘러보는 시간을 갖고 1일 귀국했다. 워싱턴 링컨기념관의 강일출할머니.

“일본이 우리 보고 위안부로 돈벌러 나갔다고 할 때마다 우리들 가슴은 터져나갔습니다.”

2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일제의 위안부 희생자들 어느 하나 기막히지 않은 게 없겠지만 강일출(86) 할머니의 사연은 실로 끔찍한 일들로 점철됐다.

5월30일 버지니아 페어팩스카운티 정부 청사에서 열린 위안부기림 평화공원 개막식에 초청된 위안부 희생자 강일출 할머니는 행사 도중 방생된 나비들의 날개짓처럼 덩실덩실 ‘나비춤’을 추었다. 압박과 야만의 사슬을 끊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몸짓을 사람들은 감동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3년의 위안소 생활. 그 시련도 모자라 일본 군대는 그녀를 산 채로 태워 죽이려 했다. 가슴 속에 화인처럼 박혀있던 아픔은 사과와 배상은 커녕, 반성할줄 모르는 일본에 대한 분노로 터져나왔다.

위안소 탈출 후 중국에서 생활했던 강 할머니는 지난 2000년 12월 한국정신대연구소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통해 일제의 천인공노할 범죄를 고발한적도 있다.

현재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는 강 할머니는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통스런 과거와 함께 미국에서 위안부기림비 제막식을 본 감회와 오늘의 일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인터뷰에 따르면 경북 상주군 화동면이 고향인 그녀는 1943년 가을, 우리 나이로 불과 16살에 일본도를 찬 두 명의 일본 순사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다른 어린 여성들과 함께 트럭과 기차를 타고 머나먼 중국 땅까지 실려간 그녀는 무단장(牧丹江) 위안소의 붉은 벽돌집에 수용됐다.

하루하루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다. 생리조차 시작되지 않은 철없는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일들을 매일 겪으면서 병이 났고, 잦은 병치레에 장티푸스까지 걸리자 일제는 그녀를 산 채로 태워죽이려 산으로 끌고 갔다.

그녀를 불쌍히 여긴 조선 군인의 도움으로 극적인 탈출을 하게 된 그녀는 한 조선족의 집에서 요양하며 병을 치료하고 중국 땅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며 결혼해 슬하의 2남1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강 할머니는 일제의 반인륜적 범죄와 만행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감히 누구에게도 그 시절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단다. 수많은 증거자료와 살아 있는 희생자들의 증언에도 부인하는 일본의 뻔뻔함을 보면서 어떤 행동이 나라와 후손을 위하는 일이며 일본을 진정으로 참회하게 하는 길인가를 심각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이 우리 보고 돈벌러 갔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터져나갔다”고 말한 강 할머니는 “일본이 망하기 싫다면 진정으로 반성과 사죄를 하고 배상을 하여 과거의 반인륜적 범죄를 용서받아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 후손들이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특히 남자들이 정치를 잘못해 여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술을 덜 먹고, 여자를 많이 사랑해줘야 한다”며 웃음짓기도 했다.

제막식 다음날 강 할머니는 함은선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의 호의로 동행한 ‘나눔의 집’ 이지현씨와 함께 워싱턴 시내 명소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링컨기념관에서는 억압받는 모든 이들의 인권 해방과 일본의 반인륜 범죄의 사과와 배상을 기도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날 강 할머니 일행에게 오찬을 대접한 재미 언론인 문기성씨는 “할머니께서는 꽃다운 소녀 시절 몹쓸 일을 당하시고도 좌절하지 않고 슬하의 2남1녀를 훌륭하게 키우셨다. 또 말년에 용기있게 일본의 범죄를 증언하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고 계신다. 정말 존경의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고 말했다.

강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사연은 ‘귀향’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고 있으며 내년도 개봉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눔의 집에서 텃밭을 일구며 옥수수와 오이, 고추 농사를 짓는 게 즐거움인 강 할머니는 “미국 땅에 위안부 기림비를 설치해줘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가 늙어서 죽어도 후손들이 이 고마움을 갚아주고 한·미 선린 우호 관계를 잘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인터뷰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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