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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이라얼의 '日관동군 요새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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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1  08: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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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하이라얼의 '日관동군 요새 박물관'을 가다 '잊지 말자(勿忘) 1931~1945'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하이라얼(海拉爾)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과 항일전쟁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과 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잊지말자 1931~1945년이라고 새겨진 박물관 입구의 조형물.

"잊지말자 1931~1945" 조형물 새겨 항일전쟁 기억
'잊지 말자(勿忘) 1931~1945'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하이라얼(海拉爾)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과 항일전쟁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과 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외신기자 방문단이 30일 찾은 하이라얼 요새 유적 박물관 입구에는 일본의 중국 침략과 항일전쟁의 역사를 깊이 새기자는 뜻으로 이같이 쓰인 조형물이 설치돼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변경 지대에 위치한 하이라얼은 1930년대 이후 일본 관동군의 중국 침략의 지휘부와 요새가 있었던 곳이다. 중국군이 소련, 몽골군과 함께 일본에 대항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가 1931년 9.18일 만주사변 이후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세운 뒤 만주를 비롯한 중국의 동북지방을 침략한 역사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

일본 관동군은 만주를 점령한 뒤 소련 침략을 위해 동북 변경 지역에 17개의 요새를 지었으며 하이라얼 요새는 규모가 가장 크고 지휘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또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소련을 가려고 들렀던 중요한 거점도시이기도 했다.

   
▲ 중국 하이라얼의 '日관동군 요새 박물관'을 가다'잊지 말자(勿忘) 1931~1945'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하이라얼(海拉爾)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과 항일전쟁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과 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과 군용물품.

박물관에는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소총과 군용물품, 만주국 정권 수뇌부와 항일 전쟁을 주도한 중국군 지도부 등의 사진이 가지런하게 전시돼 있었다.

하이라얼에서 약 30㎞ 동남쪽에 위치한 관동군 731부대는 이곳에 543지대를 운영하면서 세균 실험과 생체실험 등 잔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박물관에는 당시 세균전으로 희생된 중국인 주민들의 이름과 민족, 나이 등이 기록돼 있었고 포로로 잡힌 중국인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도 실감 나게 재현돼 있었다.

   
▲ 중국 하이라얼의 '日관동군 요새 박물관'을 가다'잊지 말자(勿忘) 1931~1945'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하이라얼(海拉爾)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과 항일전쟁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과 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시된 만주국 정부의 수뇌부.

또 부대의 모습을 축소한 모형에는 위안소도 포함돼 있어 당시 관동군도 위안부를 강제모집해 위안소를 운영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군의 기세는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소련군과 몽골군이 연합해 일본과 벌인 '눠먼한'(諾門罕) 전투에서 꺾이기 시작한다.

당시 소련군 10만 명을 비롯해 소련과 몽골군 20만 명이 일본군 10만 명과 벌인 이 전투에서 일본군 희생자는 5만 4천 명이었던 데 반해 소련군 희생자는 6천 명에 불과했다.

최근 신(新) 밀월기를 맞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의 배경에는 이처럼 일본에 함께 맞서 대항한 공통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 중국 하이라얼의 '日관동군 요새 박물관'을 가다'잊지 말자(勿忘) 1931~1945'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하이라얼(海拉爾)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과 항일전쟁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과 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박물관 앞 기념공원의 조형물.

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에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키로 합의한 것도 이런 역사를 알고 나면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당시 중국은 제2차 대전을 14년간 겪으면서 3천500만 명이 희생됐고 소련은 4년 2개월간 2천700만 명이 희생됐다.
1층 전시실 출구 앞에는 "역사는 망각을 허용치 않는다. 평화를 수호하고 발전을 바라는 강한 신념은 역사 속에서 영원토록 해야 한다.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만세"란 글귀가 적혀 있다.

또 '국제 88여단'이란 이름이 붙은 항일 부대의 부대원 중에는 젊은 시절 김일성 전 북한 주석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외신기자들은 1층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관람객들은 두꺼운 외투를 하나씩 빌려 입고 지하의 하이라얼 요새에 들어갔다.

유리로 된 통로 아래에는 당시 희생된 중국인의 유골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지하에는 당시 관동군이 주둔했던 지하기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책상과 전화가 있는 지휘센터와 일본군 병사들이 썼던 침대 등도 관람객들에게 개방돼 있었다.
이곳은 자녀를 데리고 가족단위로 오는 중국인들이 많았고 최근 직항편의 개설 등으로 인해 한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저장(浙江)성에서 15살짜리 딸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왔다는 판(潘)모씨는 "박물관을 둘러본 뒤에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딸에게도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이러한 기념관을 세우는 등 치욕의 역사를 깊이 새기는 것은 최근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 맞서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중국은 '일제 전범 자백서 45편 연속 공개' 활동을 비롯해 난징대학살 기념일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등 대일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 중국 하이라얼의 '日관동군 요새 박물관'을 가다'잊지 말자(勿忘) 1931~1945'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하이라얼(海拉爾)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과 항일전쟁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과 기념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반파시스트 전쟁 하이라얼 기념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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