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TPP 탈퇴' 재확인에 아베 성장전략 무산 위기
러시아, 트럼프와 접근하며 영토문제 강경 전환 움직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때문에 오히려 곤란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인 지난 17일 미국 뉴욕의 트럼프 자택으로 달려가 90분간 회담했다. 두 사람은 회동 후 "트럼프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아베 총리), "아베와 위대한 우정을 시작하게 됐다"(트럼프)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뢰는 며칠만에 균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 트럼프(오른쪽)와 아베 [연합뉴스TV 캡쳐]

아베 총리와의 '신뢰와 우정'을 강조했던 트럼프의 행보가 아베 총리가 공들여 온 현안들에 속속 제동을 거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문제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1일 공개한 영상메시지에서 취임 후 TPP 탈퇴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베와 손잡고 신뢰를 강조한 지 나흘만이다.

TPP는 아베 총리의 대표적인 성장전략이다. 그는 지난 17일 트럼프와 만나서도 TPP 반대 입장을 재고해 달라는 당부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이를 실천하면 TPP는 좌초될 수 밖에 없다.

TPP는 가입국 총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가 비준하면 발효되지만, 현재 12개 가입국 가운데 미국의 GDP 비중이 60.3%, 일본이 17.7%인 만큼 이들 가운데 어느 한쪽이 비준하지 않으면 발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제1야당인 민진당의 야마노이 가즈노리(山井和則) 국회대책위원장은 "TPP 발효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며 "아베 총리는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하는 등 역풍 조짐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지인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아베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문제였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협력을 제공하는 것을 계기로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이 있는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협상에 속도를 붙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날 푸틴 대통령은 반환협상 대신 돌연 러시아가 실효지배하는 이들 지역에서 양국간 '공동경제활동'을 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그는 별도 회견에서 "쿠릴 4개섬은 러시아 주권이 있는 영토"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러시아는 최근 쿠릴 4개섬 가운데 2개섬에 첨단 해안방어 미사일 시스템까지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협상 가능성을 시사해 왔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것이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기자들에게 섬 반환 문제 등에 대해 "(2차대전 종전후) 70년이 되도록 해결하지 못한 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을 흐려야 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영토문제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강경 선회 배경으로도 트럼프 당선인을 꼽는 분위기다.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이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경제제재에 나서는 등 대러 강경노선을 견지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러시아와의 관계개선 의사를 밝혀 온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트럼프 정권이 출발하면 관계개선 여지가 보이는 만큼 영토문제에 대한 국내의 여론 악화를 무릅쓰고 아베 총리와 협상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 셈이라는 것이다.

도쿄신문은 23일 "아베 총리가 APEC에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거듭 호소하고 푸틴 대통령과 북방영토 문제 등을 갖는 등 개별 정상회담도 했다"며 "이들 과정에서 항상 붙어 다닌 것인 트럼프 당선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