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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조선인 유해발굴 인골 3점 발견하고 일단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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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2  0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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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 명예교수 "1945년 전사한 조선인 가능성 작다"

불탄 흔적 없어 '화장 후 매립' 증언과 배치…日학자 "가능성 배제 못 해"


   
▲ 강제징용 유골 발굴 계기 된 1945년 잡지 '라이프' 사진 [동아시아 시민네트워크 제공]

일제 강점기에 오키나와에서 전사한 조선인 등의 유골을 찾기 위해 한국·일본·대만 시민에 의해 실시된 발굴 작업이 11일 일단 종료됐다.

사단법인 평화디딤돌(한국), 모토부초(本部町) 겐켄(健堅)의 유골을 고향에 돌려보내는 모임(이하 일본),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등 한일 양국 시민단체로 구성된 '겐켄 유골발굴 공동실행위원회'(위원회)는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모토부초(本部町)의 한 주차장에서 실시한 유골 발굴 활동을 이날 마무리했다.

위원회는 예비 발굴을 거쳐 9∼10일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벌였으며 11일 발굴 현장 측정 및 기록 작업을 하고 파헤친 흙을 다시 메웠다.

한국 측 전문가로 참여한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등뼈로 보이는 뼈 3점, 오리·오소리 등의 것으로 보이는 뼈, 기관총 탄두 등 탄두 3개, 1970∼1980년대 맥주캔, 동전 등이 발굴됐다.

이 가운데 사람 뼈는 동일인의 것으로 보이며 사망 시 연령이 10세 전후로 추정돼 위원회가 찾고 있던 1945년 히코산마루(彦山丸)호 피격 사건 희생자의 것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박 명예교수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뼈가 매립토 층에서 발견됐다. 다른 곳에서 (매립용 흙과 함께) 실려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명예교수는 '화장한 뼈를 묻었다'는 증언과 달리 이들 뼈가 불에 탄 흔적이 없으며 희생자가 14명인데 뼈가 3점 밖에 나오지 않은 점 등을 함께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굴에 참여한 일본 측 인사는 이 뼈가 조선인 전사자 등이 포함된 히코산 마루 피격 사건 희생자의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굴을 마친 후 현지에서 이뤄진 발표를 청취한 관계자에 따르면 고고학자인 아사토 스스무(安里進) 전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장은 발굴 과정에서 나온 동전이 194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이며 뼈 근처에서 산호 조각이 20개 정도 함께 나온 점에 비춰볼 때 1945년 전사자일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오키나와에서는 장례 때 산호를 함께 묻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발굴지 한쪽의 바위틈을 따라 이어진 지하 공간에서 발견된 물체의 정체도 주목된다.

깊이 약 3m 정도의 공간에 휴대용 전등과 소형카메라를 넣어 촬영해 보니 언뜻 보면 나뭇가지 모양의 긴 물체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

박 명예교수는 영상만으로는 해당 물체가 무엇인지 단언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사람의 팔뼈가 오랜 기간 묻혀 있으면 그런 모양이 될 수 있다. 불에 탄 뼛조각들이 (바위틈으로) 떨어진 것 같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박 명예교수는 이 물체를 발굴해 확인할지는 현지에서 유골 발굴 작업을 하는 오키나와 시민단체 측이 논의해서 결정하도록 제언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은 희코산 마루 희생자의 묘표(墓標, 사망자의 이름 등을 적어 무덤 앞에 설치한 표시물)로 추정되는 사진이 미국 잡지 '라이프' 1945년 5월 28일 자에 실린 것이 확인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묘표에는 '김산만두'(金山萬斗), '명촌장모'(明村長模)라는 이름도 기재돼 있었는데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에 관해 연구해 온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씨는 주민 증언, 일본군 관련 기록 등을 토대로 이들이 일본군 군속(軍屬, 군무원에 해당)으로 동원된 한반도 출신 김만두(1921년생, 경남 출신) 씨와 명장모(1918년생, 전남 출신) 씨인 것으로 파악했다.

발굴 작업은 소유자의 양해를 받아 민간 주차장 부지 일부를 파고 실시한 것이라서 예정된 작업 기간에 맞춰 11일 종료했다.

한국, 대만, 일본 시민과 재일조선인 등이 연인원 100명 이상이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모토부초 겐켄의 유골을 고향에 돌려보내는 모임은 조선인을 포함한 전쟁 희생자의 유골 발굴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지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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