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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1월21일 ‘독도대첩’…그날 그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독도신문  |  dokdo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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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9  13: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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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용수비대, 일본 순시선, 비행기 격퇴
일본이 독도 불법 침범 못하는 계기 만들어
 
1954년 11월21일은 '독도대첩’ 기념일이다. 최근 일본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트집 잡으며 한·미·일 외교차관 공동기자회견을 무산시켜 독도대첩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1954년 이날 독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한국전쟁에 참전한 홍순칠(1929~1986) 독도의용수비대장은 심한 부상을 입고 1952년 7월 명예제대를 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고향인 울릉도로 돌아왔다. 홍순칠 대장이 어느날 울릉도 경찰서에 갔더니 마당 한쪽에 2m 높이의 ‘島根縣 隱岐郡 竹島(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란 낯선 나무 팻말이 놓여있었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니, 독도에 고기잡으러 간 울릉도 어민들이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란 팻말을 세운 것을 발견하고 뽑아왔다는 것이다. 울릉도 경찰이 독도에 ‘한국 울릉군 독도'란 팻말을 꼽았지만 일본이 팻말 바꿔치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독도 근처에서 미역을 따는 우리 어부들을 쫓아내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행정력과 경찰력이 독도에 미치지 못한 틈을 타서 일본이 독도에 침략의 발을 디딘 것이다.
 
홍 대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과 울릉도 주민 33명을 모아 ‘독도의용수비대'를 꾸리기로 했다. 그는 “나라가 국난의 위기에 놓인 이때, 백의종군하는 의병으로 우리 땅 독도를 지키는데 동지들 독도로 가지 않으렵니까”라고 호소했다. 1952년 가을 부산에 나간 홍 대장은 오징어를 판 돈과 마을 주민들 오징어 판매 수수료를 모아 무기와 식량을 구입했다. 부산 ‘양키시장’(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용물품을 거래하는 암시장)에서 기관총, M1 소총, 총알 등을 마련했다. 의용수비대가 독도에 가져간 장비는 경기관총 2정, M2 칼빈소총 3정, M1 소총 10정, 권총 2정, 수류탄 50발 등이었다. 울릉도~독도 연락은 전서구(통신연락에 쓰이는 훈련된 비둘기) 3마리를 활용했다.
 
홍 대장을 비롯한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20일 낡고 작은 오징어잡이 어선을 타고 3시간 항해끝에 독도에 상륙했다. 석달 뒤인 1953년 7월23일 새벽 5시 독도수비대 200m 앞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나타났다. 결사대를 꾸린 의용수비대는 보트에 경기관총을 싣고 순시선 20m까지 접근해 수백발을 집중 사격했다. 보트의 기습 총격과 독도에서 쏘아대는 지원사격에 놀란 일본 순시선은 황급히 도망갔다.
홍 대장은 첫 전투에서 이겼지만 중화기가 없어 일본 순시선을 격침시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 그는 백방으로 노력해 소련제 직사포 한 문과 조준대가 없는 박격포 1대를 구했다.
 
1954년 11월21일 일본 비행기와 1천톤급의 일본함정 3척이 접근해왔다. 독도의용수비대가 진주한 이후 여러 차례 일본이 침입했지만 이번처럼 함정과 비행기가 한꺼번에 몰려오기는 처음이었다. 홍 대장은 “이번 전투를 승리해 다시는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입 못하게 하겠다”며 어금니를 굳게 악물었다.
각오을 다진 홍 대장은 평소 훈련대로 대원을 배치하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일본 함정이 500m까지 접근했을 때 권총으로 사격 신호한다. 박격포는 먼저 순시선(PS) 9함을 때리고 중화기는 박격포 뒤에 쏘되 지휘탑을 파괴하고 다음 좌우쪽 10, 16함을 같은 요령으로 공격한다”고 명령을 하달했다.
 
   
▲ 1966년 독도의용수비대가 훈·포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했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권총 신호와 함께 박격포탄 첫발이 일본 순시선에 명중했고, 놀란 일본 함정은 도망갔다. 일본 비행기는 독도 상공을 선회비행을 계속 하면서 위협하다 의용수비대가 완벽한 대공방어 태세를 취하자 비행기도 일본 쪽으로 사라졌다.
 
전투 결과가 궁금한 독도의용수비대는 이날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정오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소위 '다케시마'에서 한국경비대가 발포를 해서 일본 해안보안청 함정들이 피해를 입고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6년 12월30일 독도 상륙 3년 8개월만에 무기와 임무를 경찰에 인계하고 울릉도로 돌아왔다.
 
국가보훈처는 독도대첩 제67주년을 맞아 19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독도의용수비대 묘역에서 추모식을 개최했다. 독도의용수비대원(총 33명) 중 별세한 대원은 대전현충원에 17명(2명은 사병묘역), 영천호국원에 4명, 개별묘역에 6명이 안장됐다.
 
추모식에는 이승우 국립대전현충원장을 비롯해 서영득 기념사업회장, 독도의용수비대원 및 유가족 등이 참석하며, 행사는 국민의례, 헌화 및 분향, 경과보고, 추모식사, 추모헌시 낭독, 추모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1954년 11월21일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 침략을 감행하는 일본의 무장순시함 헤쿠라호와 오키호를 격퇴하여 일본이 다시는 독도를 불법 침범하지 못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정부는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를 설립하여 독도를 수호하기 위하여 특별한 희생을 한 독도의용수비대의 대원과 그 유족 등에 대하여 국가가 합당한 예우 및 지원을 하려고 지난 2005년에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을 만들어 예우 및 지원을 하고 있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예산지원과 홍보 등을 통해 독도수호를 위해 헌신한 독도의용수비대 및 유가족의 예우와 명예선양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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