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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사도광산 대응할 상설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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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04  13: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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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직 전문가 3명 "이스라엘 '야드바셈' 같은 기관 있어야"
"한국이 보유한 강제동원 기록물도 가치 커…등재 추진해야"
 
   
▲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추모관[자료사진]
 
해방 후 반세기 이상 지나 뒤늦게 시작된 한국 정부 차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은 전담기구의 법적 활동기간 만료로 11년 만인 2015년 사실상 중단됐다.
 
강제동원 피해를 입증할 새로운 자료가 속속 입수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피해자 발굴과 추가 진상규명이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과제만 쌓인 상태다. 이런 가운데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 대일 역사갈등 현안은 계속 불거지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위원회)의 길지 않은 역사를 함께한 전문가 3명에게 강제동원 문제 전담기구 재설치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위원회 근무 시절 조직 운영과 관련한 한계를 경험한 탓에 위원회가 부활하더라도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이들은 "그래도 전담기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5년 일본 메이지(明治) 산업유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응할 때 위원회에서 사도(佐渡)광산 관련 보도자료를 냈어요. 사도광산이 세계유산 추천 잠정목록 2번이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위원회의 피해자 판정 자료를 다시 검토해 사도광산 피해자 148명을 찾았죠."
 
강제동원위원회에서 조사과장으로 재직한 정혜경 박사는 최근 한일관계 최대 현안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 위원회가 활동하던 수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도광산이 2010년 처음 잠정목록에 올라갔는데, 그러려면 내부적으로는 그보다 3~4년 전부터 준비하게 된다"며 "전체적으로는 15년 가까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안의 중요도를 인지하고 그동안 정부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하기에 시간이 충분했다는 뜻이다.
 
정 박사는 2015년 말 위원회가 폐지된 후 민간 연구자로 돌아가 활동하다 2019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으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사도광산을 중심으로 한 일본 내 탄광·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냈다. 사도광산 등재 문제가 머지않아 반드시 불거진다는 판단에 따라 주제를 정했다.
 
그는 보고서를 낸 뒤 외교부에도 사도광산 등재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면서 "2019년부터 자료를 모아 대응했더라면 '사도광산은 이런 곳이다'라는 여론전을 통해 주의를 환기하고 상황을 우리가 주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강제동원 문제를 최일선에서 다룬 위원회가 존속했다면 사도광산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외교당국에 지속적으로 개진하고, 강제동원이 있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일찌감치 축적했으리라는 게 정 박사의 생각이다.
 
정 박사는 "예컨대 사도광산 피해자들은 진폐 후유증이 심했는데, 어떤 상태인지를 자제분들이 구술할 수 있으니 위원회가 유족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자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며 "피해신고 때 제출받은 자료와 사진 등을 모아 자료집을 내는 등 대응했다면 상황이 좀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이런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공신력을 인정받으려면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여야 의미가 있다"며 "위원회 존재 자체로 일본에 엄청난 압박"이라고 했다.
 
정 박사는 "사도광산뿐 아니라 이런 사안은 앞으로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위원회를 되살릴 수 없다면 기존 정부기구에 기능을 부여해서라도 강제동원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기관을 두고 안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동원위원회에서 조사과장과 심사과장으로 근무한 허광무 박사는 위원회와 같은 정부 조직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로 타국을 상대해야 하는 '강제동원 문제의 특수성'을 들었다.
 
허 박사는 "국내 역사문제라면 특정 재단이나 연구단체에 맡기는 등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강제동원은 국경을 넘어 일본 정부를 상대하는 일이어서 성격이 다르다"며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하고, 강제동원 역사 문제에 전문화된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역사에 대한 양국의 입장차는 늘 공고하다. 그러나 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구의 역할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것이 아니라 조사를 거쳐 확인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알리고, 이를 통해 일본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허 박사는 강조했다.
 
그는 "과거 일본 정부도 이같은 취지를 알았기 때문에 당시 피해자 유골 봉환이나 강제동원 관련 자료 제공과 관련해 위원회에 협조했던 것"이라며 "만날 '사과하라'고만 한들 일본 정부가 절대 사과할 리 없고, 팩트를 끈질기게 조사하는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근무한 오일환 박사는 전담기구가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뒤늦게 시작된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이 제대로 끝나지 않았고, 대일관계에서도 강제동원 역사 관련 문제가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어 진상규명 요구 역시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오 박사는 "피해를 당했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였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피해 자체를 사실로서 확인하고 남기는 작업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위원회든 특별부서든 특별법이든 이 부분을 해소하지 않으면 강제동원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와 민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2차대전 후 1950년대 국가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Yad Bashem, 이름을 기억하라) 같은 기관이 있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드 바셈은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피해 조사와 희생자 추모를 담당하는 이스라엘의 상설 정부기구다.
 
이들은 수많은 피해자와 진상규명 과제가 남았음에도 정부가 위원회 폐지에만 급급한 채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큰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위원회를 애초 한시기구로 둔 탓에 전체 활동기간 11년 중 피해신고 접수 기간을 3차례 15개월간만 운영하고, 이 기간 외에는 추가 신고를 받지 않은 채 기존에 접수한 22만여건만 처리하게 한 것은 정부가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민원 털어내기' 정도로 인식한 결과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허광무 박사는 "피해 조사는 단순히 민원 처리하듯 '명단에 있으니 도장 찍고 돈 주는' 식이 아니라 어떤 분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정부가 조사해 결과를 알려주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라며 "그럼에도 '빨리 문 닫아라. 접수한 것 완료했으면 끝이다'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허 박사는 "피해조사 이후 새로운 자료가 확보되면 이를 토대로 기존 조사 결과를 재검증해 오류를 바로잡는 것도 진상규명의 일부"라며 "일본 정부가 자료까지 제공한 '주어진 진상규명'조차 덮어버리고는 진상규명이 끝났다고 하는 것은 어이없는 얘기"라고 했다.
 
오일환 박사는 "일본과 오랜 기간 협상을 거쳐 후생연금 기록 등 많은 자료를 받아냈고, 이를 확인하면 그간 자료가 없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 중 상당수가 인정받을 수 있다"며 "정부 예산으로 수집한 자료를 쌓아놓고는 피해 신고도 받지 않고 끝낸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게다가 위원회의 존립 근거였던 특별법은 위로금이나 지원금 지급 대상을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로 한정해 연인원 650만명에 달하는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는 아무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위원회는 국내 강제동원 피해도 조사했으나 애초 피해자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허 박사는 "국내 동원자들도 귀환 도중 배에서 불이 나 집단으로 사망한 사례까지 있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며 "국내 동원 피해자에게도 점차적으로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내 강제동원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한국 정부가 확보한 강제동원 기록물의 등재를 적극 추진하자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정부는 2015년 메이지 산업유산 등재 대응이 일단락된 뒤 후속조치로 강제동원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나섰다. 외교부와 문화재청,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학계 등이 모인 회의에서 강제동원위원회를 등재 주무기관으로 두는 방안이 합의됐다.
 
관계부처로부터 이같은 제안을 받은 위원회는 내부 검토를 거쳐 2004년 이후 수집·생산한 피해조사와 지원금 지급 내용, 구술·사진자료 등 33만6천여건을 신청하기로 했다.
 
정혜경 박사는 "당시 위원회에 연락한 관계자가 '신청서만 내주면 국내 심사는 무조건 통과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며 "당시 위원회 인력이 없어 과장 2명이 어렵게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다"고 했다.
 
중앙정부가 추진하고, 민간에서도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등 분위기는 좋았다. 국가가 직접 전쟁 피해를 조사한 공식 기록이고,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일제 식민지와 점령지 전반에 관한 내용이 담겨 기록유산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강제동원 기록물은 그해 11월 세계기록유산 신청 대상을 결정하는 문화재위원회 심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기대감을 안은 채 신청을 준비한 위원회 관계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정 박사는 "일본이 메이지 산업유산에 이어 '자살특공대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리려 하자 대응 수단으로 활용했다가 일본 내 후보에서 탈락하자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며 "강제동원 기록의 가치는 충분하고, 일본을 뒤쫓아가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기록의 가치를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측은 "상대적으로 등재 가능성이 커 보이는 기록을 우선순위로 올린 것이고, (강제동원 기록물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있어 밀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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