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安在輝)

일본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아마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미안합니다’로 해석되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순서를 기다려준 뒷사람에게도 쓰고, 때로는 눈빛만 마주쳐도 이 말을 쓴다. 얼핏 보기에 일본사람들은 참 예의바르고, 다른 사람에게 배려심도 많은 선진민족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역사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일련의 태도를 들여다보면 그들에게 과연 ‘예의’와 ‘배려심’ 같은 것이 정말로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특히 그들의 끊임없는 가해로 인해 숱한 불행을 겪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진정 미안지심(未安之心)을 갖고 있는지를 곰곰 헤아려보면 결국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역사 속에서 일본이 대한민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저지른 만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장구한 세월 노략질과 침략을 일삼아온 그들의 과거사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수준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척박한 처지 때문이라는 섬나라의 환경적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역사 속에 남아있는 왜인들의 행악은 해적, 강도, 도둑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 67주년을 앞둔 지난 10일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었던 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통수권자가 자국의 땅을 밟는 일이 나라 안에서 톱뉴스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청와대의 표현처럼, ‘지방시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인식돼야 맞다.

정치인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독도행에 대해 국민들은 적게는 66.8%(리얼미터)에서 많게는 84.7%(한국리서치)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야금야금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면서 침략근성을 키우고 있는 일본에 대한 우려가 있고, 그들에게 더 이상 당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일본의 방위백서는 8년째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내용을 담아냈다. 일본 문부성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실린 고교 교과서가 더 늘어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8월엔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무례하게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울릉도에 가겠다면서 입국을 시도하다 우리 정부의 거부조치로 되돌아갔다.

‘조용한 외교’가 여전히 유효한지 재점검해야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환영하는 민심은 시나브로 침략근성을 노골화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반발과 경계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경제적인 의존을 아주 벗어던지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한계 때문이라고는 해도, 그 동안 우리 정부가 지향해온 ‘조용한 외교’가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일본을 자극하는 것이 국익에 반한다는 논리로 선택해온 ‘조용한 외교’가 최소한 ‘일본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일본은 독도를 빼앗으려는 흉심을 숨긴 채 ‘한일관계의 미래’라는 이리송한 노래를 불러왔다. 우리는 그 엉큼한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이제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힌 것은 ‘대통령의 독도시찰’ 그 당연한 일을 정치적 이슈로 놓고 여야 정치권과 지식인들이 닭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영토수호 의지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평가할 일”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라면 가장 피해야 할 아주 나쁜 통치행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뿐만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언론영토 안에서도 찬반 논란이 거세다. 보수언론들은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일본의 반발에 대한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언론들은 자기 편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런저런 난도질로 비난 퍼붓기에 열중하고 있다.

한 목소리로 지켜도 모자랄 우리 땅 ‘독도’마저도 정쟁 앞에서 먹잇감 신세가 되는 이 분통터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들 눈에는 영원토록 지켜가야 할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고 오직 코앞의 ‘권력’만 보이는 것인가. ‘독도’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 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즐길 저 교활한 이웃 일본의 미소는 도무지 염려되지 않는 것인가.

인생을 걸다시피 하면서 독도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가수 김장훈의 말을 새겨 들어보라. 그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의 이번 독도방문이 가장 이상적인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절한 때에 간 것 같다”며 “독도에 관해서는 여야가 없어야 한다. 포퓰리즘이든 아니든 그런 논쟁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서로 분쟁하지 말고 양보하고 단합해야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이 우리땅 독도에 가는 일이 톱뉴스가 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긴 역사 속에서 해적질, 강도질, 도둑질을 일삼아온 나쁜 이웃 일본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입으로는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을 연발하면서도 대한민국에 대해서 절대로 미안한 마음이 없는 고약한 이웃, 남의 나라를 빼앗아먹을 흉악한 궁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을 향해 이제 할 말은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저 음험한 족속들 앞에서 우리 스스로 분열상을 드러내는 일은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2012.08.15>

독도 신문 객원 칼럼니스트

제3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