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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107주년..네덜란드發 "잊지 말자" 운동
독도신문  |  dokdo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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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16  18: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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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107주년..네덜란드發 "잊지 말자" 운동 시작 에델바이스 뱃지/사진
이준 열사 기념관 이기항 원장/사진

"을사늑약을 잊지 말자, 다시는 치욕을 당하지 말자(Never Forget, Never Again !)"

제국주의 일본이 대한제국에 강요해 맺은 을사늑약 107주년을 맞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운동이 시작된다.

이준 열사 기념관은 을사늑약 107주년 당일인 17일 기념관에서 로테르담 한인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을사늑약의 배경과 의미 등을 가르치고 이를 설명하는 국ㆍ영문 자료와 에델바이스 배지를 나눠준다.

에델바이스의 꽃말이 `나를 잊지마세요'인 점에 착안해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고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로 제작한 것이다.

주말에 한인학교에서 한글 등을 배우는 초ㆍ중ㆍ고교 과정의 한인 학생들은 평일에 각자 다니는 국제학교나 현지 학교에 배지를 단 채 등교해 현지인들에게 의미를 전하게 된다.

오는 23일 헤이그 인근 레이첸담 소재 이준 기념교회에서 '제3회 한국 학생의 밤 행사'를 열 예정인 네덜란드 유학 한국 학생들의 모임을 비롯한 교민 사회도 배지 달기 캠페인에 동참할 예정이다.주 네덜란드 대사관(대사 이기철)도 이준 열사가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대한제국이 독립국가임을 알리다 순국한 현장에서 시작되는 이 운동을 적극 후원키로 했다.

이기항(76) 이준 아카데미 원장과 송창주(73) 이준 열사 기념관장 부부는 최근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강변하면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추진하는 것을 보며 일제 침략 역사가 사실상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생각, 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을사늑약은 이준 열사 기념관 설립의 계기이자 독도 문제, 종군위안부 문제는 물론, 한반도 분단, 6.25, 중국 등을 비참하게 떠도는 탈북자 문제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들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영국에서는 1차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을 전후한 한 달여 동안 총리 등 정치인들은 물론 대부분 국민이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양귀비꽃 배지를 단 채 역사를 되새김하고 있다.

이 원장은 그러나 우리의 경우 많은 사람이 을사늑약이나 경술국치일 등을 무심코 넘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그는 이 운동은 일본에 대한 비난 보다는 우리 스스로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고 뼈아픈 교훈으로 삼자는데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서 "헤이그에서 작게 시작된 이 운동이 해외 동포사회와 한국 내에서 크게 일어나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을사늑약, 헤이그 밀사, ICJ =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 아래 대한제국 정부를 강압해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으며 제국주의 일본은 통감부와 이사청을 통해 내정을 장악하게 됐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명목 상으로는 보호국이지만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강제 병합을 통한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밀사로 파견했다. 이들은 현지에서 을사늑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일제의 침략을 고발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며 강대국들이 외면해 대한제국이 독립국임을 인정받지 못했다. 비분강개한 이준 열사는 당시 머물고 있던 헤이그의 드 용 호텔에서 분사했다.

그로부터 85년이 흐른 1992년 네덜란드의 한 일간지에 드 용 호텔이 재개발로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는 작은 기사가 실렸다. 1972년 상사 주재원으로 왔다 사업가로 변신하며 네덜란드에 20년간 살던 이기항 씨가 이 기사를 봤다. 이 씨는 "선열 유적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헤이그 시 정부를 설득해 철거를 막고 당시로선 거금인 20만 달러를 들여 호텔을 인수했다. 이 씨 부부는 사재를 더 내고 전경련과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건물을 수리, 단장해 1995년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문을 열었다.

한편 내년으로 설립 100주년이 되는 ICJ에서 일본의 위세는 막강하다. 1920년 일본인이 처음 15명의 ICJ 재판관 중 한 명이 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3명의 재판관을 배출했다. 일본은 재판관 중에서 선출되는 소장과 부소장도 냈으나 한국인은 아직 ICJ에 한 명도 없다. 2009년부터 지난 2월까지 소장을 지내고 일반 재판관으로 복귀한 오와다 히사시는 마사코 왕세자비의 친정 아버지다.

/dokdo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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