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화를 하며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힌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취지의 언급을 연이틀 내놓았다.

'위헌성'을 이유로 거부권이 행사돼 국회법이 국회에 돌아올 경우 이를 재의(再議)에 부치지 않고 국회에 계류시키다 자동 폐기하는 수순을 택함으로써 청와대의 뜻을 수용하는 쪽으로 김 대표가 방침을 굳혔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의에 부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청와대나 당 중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곧 법제처에서 법률 검토를 해서 정부의 입장을 밝힐 거니 정부에서 확실하게 입장을 취하면 거기에 맞춰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위헌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국회에서 가결시켰는데 그 이후에 의장께서 중재해서 자구를 수정한 것만 보더라도 다소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해하게 된다"고 말해 전날(18일)에 이어 거듭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김 대표는 전날엔 "강제성이 있다는 게 대세다. 다수의 헌법학자들이 '위헌성이 있다'고 이야기해서 저희들이 난감한 상황"라며 "대통령 입장에서 위헌성이 분명한데 그걸 결재를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했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이 경우 재의에 부치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거부권이 행사돼 국회에 돌아온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법률로 확정된다.

그러나 재적 과반을 차지하는 새누리당(160석)이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의결 정족수에 미달해 표결이 이뤄질 수 없고, 내년 5월 19대 국회가 종료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여권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는 재의결에서 국회법이 가결돼 법률로 확정될 경우다. 이 경우 대통령의 탈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청와대와 당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메르스 사태 등으로 원활한 국정 운영이 중요한 시기에 더 이상 당청 갈등이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김 대표가 흔들리는 당청 관계 속에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고위 당정청 회의를 재개할 뜻을 시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이날 국회를 찾은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와 만난 뒤 기자들과 만나 황 총리가 참석하는 고위 당정청 회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총리가 당장은 메르스 현장을 가야 되니 시간을 봐가면서 필요할 때 하겠다"며 "지금 구체적으로 준비한 건 없지만 해야지"라고 했다.

김 대표는 황 총리와의 비공개 환담에서도 "당정은 한몸이며 당정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당은 어떻게 하면 정부를 도와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고 박대출 대변인이 전했다.

다만 이 같은 자동폐기 시나리오에는 야당의 반발로 인한 정국 경색이라는 부담과 중재안을 이끈 정의화 국회의장을 설득해야 하는 숙제가 따른다.

특히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여야 협상을 이끌어 온 유승민 원내대표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관건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 문제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겠다"며 여전히 입을 닫았다.

김 대표의 달라진 국회법 언급에 대한 질문에도 "김 대표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다. 아직 대화해보지 않았다"며 답변을 피했다.

유 원내대표는 당초부터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청와대의 반발로 위헌 논란이 일자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일부 자구를 수정('요구'→'요청')까지 한 마당에 이를 위헌성으로 문제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기본적 인식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법률적 문제'가 아닌,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유 원내대표가 사의를 밝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김 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을 자동폐기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유 원내대표를 설득하는 데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뜻을 수용해 어렵사리 국회법의 재의 사태를 막는다 하더라도, 원내대표가 직을 던지는 사태가 벌어지면 여권 내 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박민식 의원이 이날 당 회의석상에서 국회법 사태와 관련한 원내대표 책임론을 공개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의원은 국회법 사태를 "순수한 법률해석의 문제"로 규정하고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에서 거부권이 아주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행정부 수반의 입장에서는 취할 수 있는 조치고 이해 못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법률 해석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과잉의미를 부여해 혹시라도 이것이 '지도부 책임론이다', '책임져야 된다' 등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연결시키는 것은 정말 분열을 조장하는 분파주의적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거부권 행사시 당내 친박(親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은 '원내대표 책임론'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김 대표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물론 유 원내대표까지 안고 가야 하는 김 대표가 친박계를 향해 던진 메시지인 셈이다.

한편 당 일각에선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회동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김 대표와 가까운 김성태 의원은 이날 당 회의에서 '메르스와 가뭄'을 배경으로 들긴 했지만 "김 대표와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 내에 회동을 통해서 민심의 현주소와, 정국의 올바른 진단과 원인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 김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