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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4대의 파란만장한 삶…강렬한 소설 '파친코'
김애진 기자  |  dokdo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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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5  00: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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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작가 이민진 신작…전미도서상 후보 지명 등 미국서 큰 주목받아

오랜만에 소설 독자들이 반가워할 만한 강렬한 서사를 지닌 작품이 출간됐다. 대하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800쪽 분량의 소설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한국계 재미 소설가 이민진(50)의 신작 '파친코 1·2'(문학사상) 이야기다.

   
 

이 소설은 재일조선인 4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작품이다. 기존의 여러 소설이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통해 상당 부분 알려진 것처럼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강제로, 혹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일본으로 넘어간 이들은 '조센징', '자이니치' 등으로 불리며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엄청난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다. 실제로 그 2세, 3세들 중 작가가 된 이들이 그들의 삶을 소설이나 영화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다.

그에 비해 이 소설은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더욱 객관적인 외부의 시선으로 이들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다. 작가는 이들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좀더 절제되고 세련된 언어와 시선으로 일본 사회의 부조리함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또 이들이 헤쳐온 역사의 질곡과 슬픔, 절망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에 맞서 인간의 선한 의지와 자존감을 지키며 고난 속을 뚜벅뚜벅 걸어온 강인한 삶의 자세를 비추는 데 중점을 둔다.
특히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로 빠르고 힘있게 서사를 끌고 가면서도 딱 필요한 만큼의 심리 묘사로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덕분에 방대한 이야기임에도 늘어지는 부분 없이 시종일관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소설은 첫 문장부터 인상적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혹독한 역사의 시작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부산 영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한다. 하숙집을 운영하는 어부 부부는 언청이에 한쪽 발이 뒤틀린 기형아 '훈'이를 낳는다. 훈이는 바르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자라지만 장가를 들지 못하다 건넌 마을의 가난한 집안 막내딸 '양진'을 아내로 맞는다. 이들 부부에게서 태어난 외동딸 '순자'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 건강미 넘치는 열일곱 소녀가 된다.

아버지의 기형이 유전될 수 있다는 세간의 시선 때문에 시집을 못 가고 있던 순자는 어느날 시장에서 부유한 남자 '고한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순자는 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뒤에야 그가 일본에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임을 알게 된다.

남편이 죽은 뒤 순자를 홀로 키워온 양진은 순자의 임신 소식에 괴로워하던 중 뜻밖의 손님 '이삭'을 맞게 된다. 훈이네 하숙집에 묵은 적이 있는 형 '요셉'의 소개로 이 집을 방문한 '이삭'은 결핵으로 위독한 자신을 성심껏 보살펴준 양진 모녀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이들을 구원해주기로 마음먹는다. 순자와 결혼해 형 요셉이 있는 오사카로 데려간다. 일본에서 순자는 한수의 아들 '노아'와 이삭의 아들 '모자수'를 낳는다.

이들은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그럭저럭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듯 하지만, 대동아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일본 당국이 개신교 목사인 이삭을 천황에게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잡아가면서 고난이 시작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순자 앞에 한수가 나타나 아들 노아를 데리고 피난을 가라고 재촉한다. 일본에서 야쿠자 조직의 우두머리인 한수는 막대한 부와 정보를 지녔으며 오래 전부터 순자 모자를 찾아내 지켜보며 몰래 도와줘왔다. 한수는 이들 앞에 처음 나타난 이후 노아에게 정체를 숨기고 후원자가 된다.

일본에서 태어난 노아와 모자수의 삶은 녹록지 않다. 학교에서 늘 '조센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한다. 노아는 공부에 매진해 아버지 이삭처럼 고결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모자수는 자신을 괴롭히는 일본인들을 때려주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파친코 일을 하게 된다. 한수의 후원으로 명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던 노아는 어느날 자신의 출생을 둘러싼 비밀을 알게 되고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그는 자신이 야쿠자의 더러운 피를 물려받았다며 치를 떨고, 가족을 떠나 먼 곳에서 신분을 감추고 파친코 사업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 조선인들은 아무리 공부를 하고 똑똑해도 변변한 곳에 취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친코는 조선인들이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이다. 결국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도 미국 명문대로 유학을 다녀오고서도 1989년 일본의 외국계 은행에서 부당 해고를 당하고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으려 한다.

작가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30년 전부터 구상했다고 한다. 일곱 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예일대에 들어가 역사학을 공부하던 그는 한 초청강연에서 일본에 다녀온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재일조선인들의 삶에 관해 듣는다. 특히 조선계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 자살한 중학생 남자아이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는다. 이후 그는 로스쿨을 다니고 변호사로 일하다 건강 문제로 그만둔 뒤 재일조선인 이야기를 소설로 써 단편소설을 완성한다. 그러다 2007년 도쿄로 발령난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4년간 살게 되면서 재일조선인 수십 명과 인터뷰를 하고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해 10년 가까이 고치고 또 고쳐가며 완성한다.

200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으로 세계 11개국에 번역 출판되고 미국에서 여러 상을 받는 등 주목받았던 작가는 지난해 발표한 이 소설 '파친코'로 다시 한 번 미국 출판계와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연말 '전미(全美)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 영국 BBC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작가가 한국어로 말하기와 글쓰기는 서툰 편이어서 이 소설은 영문으로만 쓰였고, 한국 출간을 위해 번역가 이미정 씨가 한국어로 옮겼다.

각 권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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