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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왜 소녀상에 야박하게 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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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2  09: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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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족주의에 거부감' 독일에 위안부 문제 반일민족주의로 왜곡해 접근
과거사 반성해온 독일의 '궤도이탈'…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추념해와
소녀상 보편적 가치 더 강조 필요성…현지 언론, '일본의 정치적 압박 결과' 지적

"베를린이 국제적으로 자유와 인권을 위한 기억문화의 중심지가 될 좋은 기회를 역사 부정을 통해 스스로 차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베를린시(市) 미테구(區)가 심사를 통해 설치 허가를 내준 소녀상을 제막 9일 만에 철거하도록 지난 7일 행정명령을 내린 데 대해 20대 독일 시민인 킬라 쿠가 한 말이다.

독일 분단기에 동과 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은 통합의 상징이고, 이민자 사회 성장의 단면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는 베를린이 자유와 인권을 상징하면서도 기장 '힙'(hip)한 국제도시 중 하나로 발돋움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돼 왔다.

특히 과거 나치의 본거지였던 베를린은 통일 독일의 수도 자리를 되찾은 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극우주의, 포퓰리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대한 견제의 본산이 돼 왔다.

미테구가 소녀상을 받아들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쟁 시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룬다는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고 동상 설치에 동의했다.

베를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제기해온 단체와 시민은 민족주의 및 반일감정과는 거리가 꽤 있다.

동상 설치를 주도한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는 한국 관련 사안을 주로 다뤄왔지만, 보편적 인권을 우선으로 내세워왔다.

베를린에서 국제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이 과정에서 코리아협의회는 지역사회와 호흡해왔고, 인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전쟁 피해 여성 문제에 대해 교육도 했다. 이는 학교에서 수업 활동으로 인정받았다.

독일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자연스럽게 여성 인권의 보편적인 의제 속으로 조금씩 들어간 데에는 독일 시민사회의 토양 탓이다.

독일은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파시즘이 발현되는 하나의 형태로 보는 시각을 보여왔다. 나치 시대를 반성하고, 부끄러운 과거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배격하기 위한 것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독일 지도자들은 기회가 닿으면 민족주의, 국가주의, 인종주의, 전체주의의 발호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일본은 독일의 이런 인식을 역으로 정교하게 파고들어 갔다.

우리로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일본은 독일에서 집요한 로비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한일 간의 외교적 분쟁, 민족주의 문제로 몰아왔다.

독일 당국이 한일 양국 간의 분쟁으로 인식해 부담을 느끼도록 하려는 일본 측의 시도로 보인다.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베를린 소녀상 제작을 지원한 정의기억연대의 회계처리 부정 의혹 사건까지 끌어들여 독일 측을 설득하는 무기로 삼았다.

미테구의 철거명령 공문과 보도자료에는 이런 일본 측의 주장이 반영돼 있다는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테구는 소녀상의 비문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면서 "미테구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에 반대하는 인상을 준다. 일방적인 공공장소의 도구화를 거부한다"고 철거명령의 이유를 들었다.

물론 독일이 외교적, 경제적 입장에서 같은 주요 7개국(G7) 국가인 일본의 집요한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독일 현지 언론에서도 미테구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독일의 진보언론 타게스슈피겔은 지난 8일 기사에서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사과가 진정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이었음을, 독선적인 자기주장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독일과 일본 정부가 한 방식은 이러한 동상이 얼마나 꼭 필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신문은 "미테구는 소녀상을 비난하고 소녀상을 설치한 관계자들을 부정직한 사람들로 내몰았다"면서 "여기엔 분명히 (일본의) 정치적 압박과 자신들의 실책을 숨기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비판했다.

베를린 시민사회에서는 베를린 지방정부가 진보계열의 사회민주당, 녹색당, 좌파당 연합 정권이라는 점에서 더욱 미테구의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

진보세력이 보편적인 전쟁 피해 여성 문제를 민족주의 문제로 잘못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 시장은 사회민주당, 미테구청장은 녹색당 소속이다.

독일 당국의 이번 움직임은 전후 독일 사회가 나아간 길과는 어긋나 있다.

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인권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보여주는, 과거사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시민사회의 성숙을 추구해가는 대표적인 국가다.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은 대표적인 사례다. 아직 식민지배 시절에 대해서는 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아오지만 '훔볼트 포럼'을 만들어가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훔볼트 포럼은 베를린의 옛 프로이센 왕궁을 복원한 건물을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한 성찰로 채우려는 시도다.

철거명령에 대해 베를린 시민이 점점 더 고개를 젓고 있는 이유도 독일의 이런 노력과는 결이 다른 판단이기 때문이다. 독일 시민사회에서는 철거명령을 반대하는 청원운동도 시작됐다.

우리로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여성 인권 문제라는 점을 독일 시민사회에 더욱 강조하고 공감대를 넓혀갈 필요성이 있는 대목이다.

베를린 소녀상의 허가 기간은 애초 1년이다. 기한이 지나기 전 연장을 해야 한다. 철거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고 본안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한동안 소녀상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대결적 구도가 전개되면 1년 후 심사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민족주의와 파시즘을 초록동색으로 볼 수밖에 없는 독일인들을 설득하고 일본의 왜곡 시도를 막기 위해서는 독일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 보여준 보편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민사회에서 나온다.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은 "독일과 프랑스는 20세기 초 터키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추념비와 정부 공식 행사를 통해 자국의 기억 문화로 받아들였다"면서 "우호적인 현지 언론이 보여주듯, 독일 내 아시아계 시민들이 문제의 국제성과 보편성에 집중한다면 그 목소리도 주류 사회에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반도 연구는 그 성과가 일반에 전달될 수 있도록 현지 언어로 축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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