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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붉은 항일'…"김일성의 남침은 쓰러져가던 日 구해준 신풍"황대일 기자, 공산주의 운동 조명
독도신문  |  dokdotime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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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19  0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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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한국령' 표시 1949년 美 국무부 지도[돌베개 제공.]
 
13세기 세계 최강이었던 몽골 군대가 고려군과 함께 일본 정벌에 나섰다. 쓰시마섬을 정벌한 뒤 규슈에 상륙한 여몽 연합군의 날카로운 군세에 일본군은 저항다운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유일한 저항군은 자연이었다. 거센 바람이 몰락해 가던 일본을 밑바닥에서 건져 올렸다. 태풍이 몰고 온 풍랑은 연합군의 배를 부수고 또 부쉈다. 그것도 2번씩이나. 몽골의 일본 정벌은 2차례 모두 태풍 탓에 실패했다. 일본인들은 그때부터 태풍을 가미카제(神風), 즉 신의 바람이라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은 불리한 전황을 뒤집고자 '가미카제' 특공대를 만들며 또 한 번 신풍이 불길 기대했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2발에 일본 열도는 초토화됐고, 일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전후 일본은 철저히 망했다. 먹거리는 궁했고, 물가는 앙등했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1천100개 기업이 도산했다.
 
구원 투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했다. 북한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남침했을 때,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는 "천우신조"라며 반겼다. 전쟁이 터지자 군수공장으로 변한 일본은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3번째 신풍이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였다.
 
한국전쟁으로 거둔 외화 수입은 1950년 14.8%, 51년 26.4%, 52년 36.8%로 매년 증가했다. 1952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수준으로 경제를 회복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일 정책 변화를 이끈 게 일본으로 선 큰 수확이었다. 전후 미국은 1870년대 이후 승승장구하던 미쓰이, 미쓰비시, 야스다 등 15개 재벌을 해체했다. "군국주의 전쟁 수단으로 악용된 만큼 산업지배력을 분산해야 국제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 후 이들은 불사조처럼 부활했다. 일본이 적국이 아니라 '반공의 보루'로 위상이 바뀌면서 재벌 개혁이 무의미해졌다고 미국이 판단한 조처 덕택이었다.
 
북한의 남침은 한국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분쟁에도 영향을 줬다. 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 48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평화조약이 독도 영유권 분쟁의 씨앗이 됐다는 점에서다.
 
황대일 연합뉴스 선임기자가 쓴 신간 '붉은 항일'에 따르면 1949년 11월 5차 평화조약 초안까지만 해도 "일본이 한국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와 거문도, 울릉도, 독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청구권을 포기한다"고 적시돼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기간에 독도가 쏙 빠졌다. 황 기자는 민족문화논총에 게재된 이용호의 논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2조 (a)항과 독도'를 인용하며 이는 미국에 대한 일본의 로비와 한국의 부실 대응, 미국의 세계 전략 등이 얽히고설킨 결과였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한국전쟁이 미친 대내외적 영향뿐 아니라 1918년 한인사회당 창설 후 복잡다단하게 펼쳐진 국내 공산주의 운동과 항일 운동도 책에서 살펴본다. 시대별로 꼼꼼하게 정리한 항일·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비판적이다. 공산주의 운동가들이 상하이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진영에 때때로 갈등을 불러일으킨 데다 독립보다는 공산주의 국제연합인 '코민테른'에 맹종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건국 전 일제 치하의 독립투쟁을 좌파가 주도했고, 민족주의자들의 항일운동은 미미했다는 역사학계 안팎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며 "공산주의자들의 항일운동 지향점은 자유민주 국가 건설이 아닌 '붉은 세상'의 구현이었다"고 말한다. 기파랑.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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