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수정전 오타니유물 =성균관대 박물관은 일본강점기 조선총독부 박물관장이었던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가 국내 유적·유물을 찾아다니며 찍은 유리원판 1천876점의 디지털 복원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고 21일 밝혔다. 1930년 촬영한 경복궁 수정전의 유리원판을 디지털 복원한 사진.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중앙아세아 불적 탐험대 수집품'이라 적힌 명패를 통해 수정전이 '오타니 컬렉션'의 보관소로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2.9.21 << 성균관대박물관 제공 >>

1935년 전남 곡성 관음사 원통전 관음보살 = 성균관대 박물관은 일본강점기 조선총독부 박물관장이었던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가 국내 유적·유물을 찾아다니며 찍은 유리원판 1천876점의 디지털 복원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고 21일 밝혔다. 1935년 9월 촬영한 전남 곡성 관음사 원통전 관음보살의 모습. 고려말에 제작된 원통전, 관음보살상, 후불탱화의 본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은 축대와 기단만 남아있는 원통전을 복원하는 주요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2.9.21 << 성균관대박물관 제공 >>

일제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 문화재를 촬영한 유리원판 1천800여점이 디지털로 생생하게 복원됐다.

유리원판은 식민통치의 산물이지만 지금은 소실된 우리 문화유산의 모습과 일본강점기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성균관대박물관(관장 이희목)은 일본강점기 조선총독부 박물관장이었던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1892∼1960)가 한반도 전역에 있는 유적·유물을 찾아다니며 찍은 유리원판 1천876점의 디지털 복원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고 21일 밝혔다. 복원사업을 시작한 지 9년만이다.

성균관대박물관은 이 가운데 미공개된 60점을 24일부터 12월24일까지 일반에 공개한다.

후지타는 일본강점기 조선의 문화재 발굴·관리를 총괄했던 인물. 그는 1922∼1944년 국내 유물과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필름의 초기형태인 유리원판 사진 수천여장을 찍었다.성균관대는 1953년 후지타의 지인에게서 사진을 사들였다. 2004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유리원판 전체를 디지털로 복원하고 사진 내용을 조사하는 작업을 했다. 후지타가 유리원판에 기록한 촬영 지역과 연원일, 코드번호 등을 바탕으로 약 1천800여점의 촬영시기와 지역을 확인했다.

성균관대박물관 김대식 학예실장은 "복원 자료는 소실되거나 훼손된 우리 문화재의 본래 모습을 복원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후지타의 행적을 추적해 당시 일본이 식민사관을 확립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도 실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유리원판에 남은 한국 문화유산의 '원형' = 복원 자료 중에는 1952년 한국전쟁 중 소실된 전남 곡성 관음사의 원통전, 관음보살상, 후불탱화의 본래 모습이 포함됐다.

심봉사가 공양미 300석을 시주했다는 전설로 심청전의 기원이 된 관음사에는 고려말에 제작된 원통전과 관음보살상이 있었다. 지금 원통전은 축대와 기단만 남아있어 복원의 주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앙아시아에서 약탈한 유물의 보관소로 쓰였던 경복궁 수정전의 모습도 확인됐다1930년 수정전을 찍은 사진을 확대해보면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중앙아세아 불적 탐험대 수집품'이란 명패가 보인다. 한때 문화·학술의 상징인 집현전으로 쓰였던 수정전이 약탈유물 '오타니 컬렉션'의 보관소로 쓰인 것이다. 일제는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전각 위에 피뢰침 2개를 설치하기도 했다.

1929년 10월 촬영한 사진을 보면 광화문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가 나중에 총독부 청사 앞으로 광화문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청동 총리공관 부근에서 찍은 이 사진은 광화문 앞 경성의전 교사(校舍), 제2회 조선박람회 가설물을 비롯해 삼청동 초가집, 빨래하는 여인 등 일상 모습도 보여준다.

분단으로 북한 유적지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후지타의 자료는 더욱 의미가 크다.

1952년 한국전쟁으로 전소한 평양 광법사는 이후 복원돼 북한 제1의 사찰로 간주된다. 광법사가 본래 동국명사(東國名寺)로 불렸다는 사실과 함께 그 실체조차 알 수 없었던 천수관음상의 존재도 이번에 확인됐다.

◇'식민사학의 대표주자' 후지타 = 후지타는 1922년 조선총독부의 관원을 시작으로 총독부 박물관장, 조선사편수회 수사관, 경성제국대 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는 식민사관의 하나인 만선사관(滿鮮史觀)을 확립하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 만주를 찾아 고구려와 발해 유적 사진 수백 장을 촬영하기도 했다.

김대식 실장은 "유리원판 사진을 한 장 촬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1920년대 당시 중산층 월급에 견줄 정도로 고가였다"며 "당시 후지타의 활동은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후지타는 일제 패망 직후 유리원판을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부산까지 가지고 갔으나 여의치 않자 국내에 남기고 떠났다. 이후에도 그는 일본고고학회장과 교수를 역임하며 '조선의 역사'를 펴내는 등 문화사적에서 식민사관을 완성하려 했다.

김 실장은 "흥미로운 사실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진행된 대규모의 조사사업과 발굴이 일본 본토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라며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문화재 상당수가 소실됐는데, 정작 자신들의 문화재 자료는 남기지 않아 그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안소영기자dokdotime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