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산단화(山茶花)

2.3 직삼

하슬라성에 도착한 때는 노을이 막 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었다. 먼 길을 재촉해온 심신이 무척 고됐다. 하지만, 주청(州廳)에 도착한 이사부는 영접을 나온 장수들을 모아놓고 회합을 열었다.

“내가 이번에 하슬라주 군주로 임명돼 오면서 폐하로부터 지엄한 왕명을 받았다. 저 우산국의 야만 해적들을 소탕하여 폐해를 종식시키고, 일체의 후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제장들은 나와 함께 우산국을 복속시킬 묘책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실직주 아장 도형이 나서서 말했다.

“마침 선부서(船府署)를 통해서 천거된 인재 한 분이 있나이다.”

“어떤 인물이냐?”

“직삼(直三)이라고 하는 분이온데, 해전을 하자면 반드시 필요한 인물로 사료되옵니다.”

“직삼이라.... . 어떤 자인가?”

“직삼은 이곳 명주, 그러니까 하슬라주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호족 집안의 장손입니다. 창해삼국(滄海三國) 중 예국(濊國) 귀족의 후손인 그의 부친은 여러 척의 배를 짓고 부리며 살던 선주였으나, 바다에서 우산국 해적선와 조우하여 전투를 벌이던 중에 전사했다 합니다.”

이사부는 배 이야기가 나오자 귀가 번쩍 띄었다. 저 파도가 높고 험한 동해바다 건너에 있는 적을 소탕하자면 전선(戰船)은 기본적으로 구해야 할 전비였다.

“그래,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직접 만나보고 싶구나.”

“주청 밖에 대기시켜 놓았사옵니다. 곧바로 들이겠나이다.”

도형은 곧바로 밖으로 나가 직삼이라는 사나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키는 좀 작았지만, 체구가 당당하고 까무잡잡하게 생긴 사나이는 대청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군주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뵈옵게 되기를 학수고대하였나이다. 소인 직삼이라고 하옵니다.”

“반갑소. 방금 도형 아장으로부터 간단한 소개말을 들었소. 누대로 바다에서 배를 부려온 집안이라고 들었소만.”

“예. 소인은 대대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워온 이 지역 선주 가문의 자손이옵니다.”

“부친이 우산국 배와 싸우다가 전사하신 게 맞소이까?”

“예. 제 부친의 함자는 하신(荷信)이라고 하옵는데, 연전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우산국 해적선과 전투를 벌이다가 그만 참살을 당했나이다.”

“우산국에 대해 원한이 깊으시겠구려.”

직삼의 얼굴에 분노의 기운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의 표정을 가득 채운 분노는 이내 단단한 결의로 바뀌었다.

“그러하옵니다. 소인은 우산국 놈들을 철천지원수로 삼고 절치부심하며 살고 있나이다. 그 섬의 야만인들을 모두 척살하는 일이 제 평생의 소원이옵나이다.”

“지금 알다시피 우리 신라에는 해전을 치를 전선과 수군이 온전히 갖춰져 있지 않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산국 정벌은 미뤄둘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대두해 있소. 그래...직삼 공께서는 지금 어찌하고 있으시오?”

“제게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명월선(明月船)이라는 첨저선(尖底船)들이 있습니다. 또한 가산을 털어 지금 전선을 더 만드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나이다.”

“첨저선이라......굳이 첨저선을 써야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동해 울릉도 근해는 파도가 높고 물이 깊으며 암초가 많은 바다이옵니다. 그런 바다에는 첨저선이 유용하옵니다.”

“아무래도 파도가 높으니 배의 높이도 달라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렇사옵니다. 동해는 워낙 파도가 높아 전선의 높이가 여느 배보다 최소한 한 길은 더 높게 지어야 하옵니다.”

“해풍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돛을 앞뒤로 달아야 한다고 들었소만?”

“군주님께서 잘 알고 계시옵니다. 배의 앞과 뒤에 두 개의 돛을 달아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이를 적절히 조정해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옵니다.”

“모름지기 전선이라 하면 속도가 상당히 문제가 될 터인데, 노를 많이 달아서 추진력을 높이는 건 어떻소?”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만일에 배를 새로 짓는다면 설계과정에서 전선 양쪽에 노를 더 많이 붙이도록 하면 성능을 높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소. 우리에게는 해전에 능한 수군 병사가 있지 않소. 이 난제를 풀어볼 방안이 있겠소?”

“그 문제에 대해서도 염려를 놓으시옵소서. 제 수하에 있는 사병들과 예전 창해삼국 출신의 선원들 중에는 해전을 경험한 자들이 꽤 있사옵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훈련을 하면 해전에 필요한 군사력을 확보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나이다.”

이사부는 무릎을 쳤다. 하늘이 신라국을 돕고 나를 돕는구나.... 직삼이라는 자에 대해 깊은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이사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온 힘을 합쳐 저 무도한 울릉도의 비적들을 무찌릅시다.”

직삼은 이사부의 제의에 기다렸다는 듯이 감격에 겨운 낯빛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꺾어 예를 갖추며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두어만 주신다면, 신명을 다 바쳐 충성하겠나이다.”

이사부는 대청에 모인 장수들 모두를 향해 목청을 돋워 말했다.

“다들 들으라. 직삼 공의 조선장(造船場)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최대한 지원하여 전선제작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라. 또한 내일부터라도 직삼 공의 협조를 받아 병사들에게 해전에 필요한 훈련을 시킬 것이다. 빈틈없이 시행하라. 알겠느냐?”

“예. 알겠나이다.”

군장 부장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들의 얼굴에도 커다란 기대가 가득했다. 이사부는 중군장에게 말했다.

“병서에 이르기를 시무자멸 시문자망(侍武者滅 侍文者亡)이라 했다. 칼의 힘에만 의지하는 자는 멸망하고 인정만 베푸는 자도 망한다고 했느니라. 전쟁을 벌이기 전에 저들의 항복을 받아낼 방도가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전략은 없을 터. 적에게 귀복을 요구할 사개(使介)를 일차 보낼 것이다. 내일아침에 바다를 건너갈 마땅한 병사를 선발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아울러 사개를 울릉도까지 싣고 갔다 올 배와 유능한 사공을 대기시켜라.”

“알겠나이다.”

이사부는 원로에 깃들었던 피로가 한꺼번에 다 씻긴 듯이 개운한 마음으로 회합을 끝냈다.

*

다음날 새벽 이사부는 죽간(竹簡)을 펼쳐놓고 붓을 들어 우산국에 보낼 서찰을 써 내려갔다.

‘우해대왕과 울릉도 거민들은 들으라. 울릉도는 고래(古來)로부터 반도의 부속도서였으며, 거민들 또한 이곳에서 건너간 자들이니 지금은 대 신라국의 속도(屬島)임이 분명하도다. 그럼에도 섬에 살고 있는 일당들이 나라를 참칭하고 부모국인 신라의 땅을 노략질하는 불충마저 저질러 천추에 씻지 못할 대죄를 짓고 있음을 통탄치 않을 수 없노라. 마땅히 정벌하여 모조리 멸함이 가하나, 대 신라국은 그대들의 모국으로서 하늘같은 은혜를 베풀어 평화로이 복속의 절차를 밟을 기회를 주고자 하니 이를 기꺼이 수용하라. 대 신라국의 이 같은 은전을 순순히 가납한다면 그대들은 추후에도 마땅한 도주(島主)의 휘하에서 지금까지 영위해왔던 편안한 삶을 계속 누릴 수 있으리라. 그러나 만약 후의를 마다하고 대 신라국에 끝내 맞서고자 한다면 그대들은 일거에 멸종을 면키 어려울 것이니, 대의를 깊이 헤아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앙망하노라.’

*

아침밥을 먹고 나니 중군장 무덕이 우산국으로 갈 사개를 자원했다는 군사를 데리고 주청으로 왔다. 인물이 훤하게 생긴 젊은 병사였다.

“이름이 무엇이냐?”

젊은 병사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준모(俊模)라고 하옵니다.” “그래, 네가 지금부터 맡게 될 임무를 아느냐?”

“예. 우산국에 항복을 권하는 군주님의 서찰을 전달하고 답찰을 받아오는 일인 줄 아옵니다.”

젊은 병사의 말투에 굳건한 결기가 느껴졌다.

“이 사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또한 아주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느냐?”

“잘 알고 있나이다.”

“두렵지 아니 하냐?”

“조금도 두렵지 않나이다. 소인은 대 신라국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각오를 다진 지 이미 오래 되었사옵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대와 같은 젊은이가 있어서 신라는 참으로 든든하고 앞날이 양양하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보다도 더 조국을 사랑하는 동지들이 많은 줄 아옵니다. 목숨 바쳐 대 신라국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얼마든지 있나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전장에서 만나는 이 같은 젊은이들을 볼 적마다 신라는 기필코 번창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곤 했다.

“그렇다. 대 신라국에는 그대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할 젊은이들이 샘솟듯 늘어나고 있다. 내 오늘 그대가 보여준 기개를 결코 잊지 않겠다.”

“황공하옵니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오라.”

“알겠나이다. 장군.”

이사부는 준모라는 병사를 싣고 가는 고깃배가 수평선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그를 배웅했다.

*

사개를 보내고 난 다음 이사부는 군장과 부장들을 대동하고 직삼이 차려놓은 조선장이 있는 자가곡(資可谷)으로 갔다. 조선장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이사부가 나타나자 직삼은 황황히 나와 그를 맞이했다. 직삼의 뒤를 따라 조선장(造船匠)과 도목수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달려 나와 인사를 했다.

“장군께서 친히 나오셨나이까?”

“수고가 많소. 그런데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는 주로 어떤 것을 쓰시오?”

“잘 말린 해송과 낙엽송, 그리고 참죽나무 등이 쓰이나이다.”

“목재를 비롯하여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정리하여 알려주시오. 수하들에게 일러 즉시 조달토록 하겠소.”

“예. 그리하겠습니다.”

조선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전선은 모두 여섯 척이었다. 직삼은 만들고 있는 배들을 차례로 안내하며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세 척은 이미 몸체가 만들어져서 멍아를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고, 두 척은 이제 막 아엽파기와 배물막기를 시작했나이다.”

“그렇구려.”

“여기 한 척은 넓배기와 동배기를 하는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척은 이제 겨우 곱장쇠를 놓고 있는 중이옵니다.”

“그렇소이까. 생각보다 훨씬 더 공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구먼.”

“그러하옵니다. 배를 짓기 위해서는 최소한 스무 가지 이상의 장인(匠人)기술이 쓰입니다.”

“아무래도 배를 훨씬 더 많이 지어야겠소.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충분히 댈 터이니, 전선을 더욱 많이 만들길 바라오.”

“알겠나이다. 분부 받자와 그리 하겠나이다.”

직삼은 이사부에게 허리를 숙여 뜻을 받들겠다는 의사와 감사의 뜻을 함께 표했다. 그의 얼굴에는 새로운 감개와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 든든했다. 전선이 어느 정도 구축이 되어야 우산국 정벌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노심초사했는데, 생각지 않게 그런 일들이 수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사부는 해전 훈련을 막 시작한 군사들의 연병장을 돌아보았다. 크고 작은 해전경험으로 숙달된 직삼의 사병들이 하슬라주와 실직주 병사들 앞에서 해상전투기술들을 시연하고 있었다.

*

“장군! 기침하셨나이까?”

새로운 준비로 분주하게 보낸 나날이 이레를 막 넘긴 날 신 새벽이었다. 그동안 직삼의 조선장에 물자와 인력을 배로 늘리고, 이미 건조하고 있는 배와 새로 지을 배를 합하여 목표를 모두 스물 한 척으로 높였다. 전날 밤 꿈자리가 사나워서 깊은 잠을 들지 못했다. 하늘에 잔별이 아직도 성성한 이른 시각에 중군장 무덕이 이사부의 처소 앞에 들어 있었다.

“이른 시각에 웬 일인가?”

이사부는 처소 문을 열고 나와 하품을 섞으며 물었다.

“참혹한 일이 일어났나이다.”

“무엇이냐?”

“다름이 아니옵고.....우산국으로 건너갔던 배가 돌아왔나이다.”

일시에 잠이 확 달아나는 전갈이었다.

“그래? 일이 어찌 되었는가? 사개 준모는 돌아왔느냐?”

“예. 하오나..... .”

“그 아이가 돌아왔어?”

중군장이 어두운 모습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돌아오긴 했사오나, 살아오지는 못하였나이다.”

불길했던 예감대로 일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놈들이 준모를 죽였더냐?”

“그러하옵니다. 준모를 참수하여 시신을 거적때기에 싸서 보냈나이다.”

“서찰 같은 것은 없던가?”

“예. 답찰은 따로 있지 아니하나이다.”

“저런, 무도한 놈들!”

“배를 부리고 갔다 온 사공이 밖에 있사온데 들여도 되겠나이까?”

“들라하라.”

중군장이 대문 쪽으로 나가 밖에 있던 중년의 사공을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사공은 이사부를 보자마자 엎드려 큰 소리로 울었다. 죽지 않고 겨우 살아 돌아온 자의 안도와 설움도 섞여있을 터였다.

“그래. 준모는 어찌 죽었느냐?”

“가지고 간 서찰을 받아 읽은 우해라는 우산국의 왕이 직접 나서서 월도(月刀)로 가차 없이 목을 쳤나이다.”

사공은 더욱 섧게 울었다.

“마지막 순간의 준모는 어떠했느냐?”

“적들 앞에서 너무나 당당했사옵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우해왕을 향해 ‘모국에 대해 역심을 품는다면 우산국은 대 신라국으로부터 처절하게 응징당할 것’이라며 저들을 끝까지 꾸짖었나이다.”

이사부는 가슴이 느꺼워졌다. 나라를 위해 그렇게 죽어갈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뿌듯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놈들의 행색은 어떠하더냐?”

“초라한 꼴들이었으나, 우해왕은 물론 군사들의 모습은 험악하게 생긴 지세만큼이나 험상궂었나이다.”

“그러하구나. 어쨌든 고초가 많았다. 물러가 휴식을 취하라.”

사공은 눈물을 그치지 못한 채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고는 방을 나갔다.

이사부가 중군장에게 일렀다.

“준모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어라. 또 그의 가족들에게 곡식을 넉넉히 전해주고 각별히 위로하라.”

“예. 분부대로 시행하겠나이다.”

중군장이 물러간 다음, 이사부는 아무래도 바다를 건너가 저들을 모조리 쳐부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선 바다를 건너는 일이 문제일 테지만, 직삼이 있으니 그도 대책이 마련될 것이어서 나머지 전략만 제대로 짜면 될 것 같았다.

*

한낮이 되었을 무렵 서라벌 왕궁으로부터 전령이 당도했다. 전령은 며칠 전 이사부가 올린 장계(狀啓)에 대한 왕의 처결 교지(敎旨)를 전했다.

이사부는 군장 부장들을 불러 군의를 열었다. 사람을 따로 보내어 조선장에 있는 직삼도 함께 불렀다. 우산국에 사개로 갔던 준모가 무참히 목이 잘려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연해 있던 참이라, 장수들은 모두 굳은 모습이었다. 이사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들어라. 이 자리에 있는 직삼 공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인재다. 내 며칠 전 폐하께 장계를 올려 직삼 공을 하슬라주 아장으로 임명해주실 것을 주청 드린 바 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폐하께서 이를 윤허하시는 왕명을 보내오셨다. 하여, 이 자리에서 직삼 공을 아장 관직을 전수하고자 하니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군장 부장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여 복종의 예를 갖췄다.

“분부 받잡겠나이다.”

이사부 앞에 허리를 굽히고 서 있던 직삼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런 임명에 자못 흥분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넙죽 엎드렸다.

“소인은 미관말직이라도 우산국을 쳐부수는 직분이면 흡족하나이다. 아장이라니 천부당만부당한 하명이시옵니다.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사부가 다시 말했다.

“왕명으로 결정된 일이니 복종하라.”

직삼은 엎드린 채로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의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군주님의 은덕이 하해와 같사와 소인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황감하기 그지없나이다.”

이사부는 직삼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아비의 원수를 반드시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 국왕 폐하의 지엄한 명을 받은 하슬라주 아장 직삼은 지금부터 나와 더불어 우산국 정벌에 신명을 다 바쳐야 할 것이다.”

직삼은 감격한 얼굴로 이사부 앞에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였다.

“군주님을 받들어 모시고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나이다.”

이사부는 참석한 장수들 모두를 향해 다시 일어섰다.

“모두들 알다시피, 우산국에 귀복을 요구하러 갔던 사개 준모가 무참히 참살되어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는 저 야만 해적들이 우리 신라국을 가벼이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명백한 증좌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는 기필코 전쟁으로 저들을 정벌하여 복속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하여, 우산국 정벌군은 전선 구축과 해전 훈련을 서둘러 마친 다음 이른 시일 내에 출병하여 저들을 궤멸시켜야 것이다. 임무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예. 분부 받들겠나이다.”

좌중은 숨소리 하나 없도록 경건하고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봄이었음에도, 밤바람이 후텁지근했다.

[제 2장 끝]

-연재 7회에 이어집니다-

<註>

* 창해삼국(滄海三國, 2000년전 동해안 강릉지역의 예국濊國, 삼척지역의 실직국悉直國, 울진지역에 있던 파조국波朝國 또는 파단국波但國이란 군장국가를 함께 일컬어 말함) * 첨저선(尖底船, 배 밑이 뾰족하고 홀수가 깊은 선박) * 사개(使介, 사신) * 자가곡(資可谷, 강동) * 멍아(돛을 세우는 디딤바닥) * 아엽파기(통나무의 양 옆에 홈을 파 나무와 나무를 붙이는 작업) * 배물막기(특수 제작한 쇠못으로 몸체를 고정하고 나무틈새를 대나무밥으로 메우는 공정) * 넓배기(판자와 판자를 넓게 붙이는 작업) * 동배기(판자의 끝을 붙이는 작업) * 곱장쇠(배 밑바닥에 대는 휜 참나무) * 아장(亞將, 군주 다음의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