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  휘 (安 輝 / 본명 安在輝)                   그림:   문   악   보

-이사부, 우산국을 정벌하다 -제7회-

제3장- 철옹성(鐵甕城)

3.1 명진

토단법(土丹法)..... 들숨에 따라 들어온 하늘의 밝은 빛에 심장의 열기를 합해 하단전으로 내린다. 지기와 서로 합쳐지는 그곳이 곧 무심의 자리....상단전을 어지럽히는 온갖 걱정과 잡념들이 일시에 안개처럼 사라진다.

다시 날숨을 통해서 체내에 있는 탁기를 배출하면 몸에 스며든 지기가 천기를 맞으면서 신수(腎水)가 감응하여 수기가 상승한다. 드디어 입천장과 어금니 사이 그리고 혀 아래에서 옥천(玉泉)이 분출되어 입안에 달콤한 향기가 느껴진다. 몸 안에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사부는 며칠 째 해변에 있는 바위산 낭떠러지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서 한동안 하지 못했던 낭가 수련을 하고 있었다.

기공은 술법의 기본이다. 전장에서 굳이 술법을 쓸 일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수련은 해야 한다. 수련을 게을리 하면 어리석음이 잡초처럼 자라 올라 판단을 가로막는다.

가을 날씨라 해도 바람이 제법 차서 귀가 시렸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군대를 통솔하고, 응전을 모색하다보면 차분히 내공을 다질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시시때때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고 결행하는 일만 하더라도 시간이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산국 정벌을 앞두고, 전비(戰備)를 구축하는 일과 병사들을 단련시키는 과정이 무르익었으니, 그에 못지않게 스스로의 심신을 강고히 만드는 일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전선을 이끌고 바다 위에서, 그리고 바다를 건너서 일전을 벌이는 일은 일찍이 치러보지 못했던 전투다.

아무래도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어야 할 서툰 전쟁이 될 것이다. 이태 전 그저 한번 건너가 살펴보려다가 풍랑을 만나, 동해 한복판에서 사경을 헤맨 경험이 있는 이사부에게 우산국 정벌은 결코 만만해 보이는 출정이 아니었다.

바다는 변화무쌍하다. 아침 한나절만 해도 물빛이 여러 차례 바뀌는데, 그 물빛은 하늘을 좇는다. 결국 하늘의 변화무쌍함이 바다의 변덕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바다의 용틀임은 하늘의 오묘한 뜻을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끌어안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종의 부조화가 아닐까.

하늘의 신묘한 기운이 달라질 때마다 들숨을 따라 들어오는 대 우주의 기운 또한 다르다. 인간은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다. 그런 하찮은 인간이 하늘 뜻에 일치하여 살고자 하는, 하늘마음과 하늘정신 그대로를 닮은 하늘사람이 되고자 하는 수련이 과연 가당하기나 한 욕심일까...때로 그런 의구심이 드는 적도 아주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무예를 통달하고, 술법을 익혀 더러 귀신의 움직임까지 읽어내는 재주를 지녔음에도, 무궁무진한 우주만물의 변화를 엿보는 것은 여전히 어림없는 난제다.

세상의 무궁무진함을 깨우쳐주는 일 중에도 으뜸은 역시 인간이란 동물의 태생적 한계 아니었던가. 제 아무리 시공(時空)을 뛰어넘으려 애를 써도 언제나 벽에 부딪치고 말 뿐인... .

이사부는 스며드는 상념들을 한동안 밀어내다가 수련을 접었다.

은빛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 위를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날았다. 무사의 생을 살기로 작정한 게 언제였으며, 수련을 위해서 심신을 담금질하며 살아온 지는 또 얼마이던가. 장수로서 전장을 누비며 목숨을 내걸고 헤쳐 온 세월은 늘 버거웠다. 돌이켜 보면 그 하루하루가 험하고 고된 나날이었다.

눈을 감고 세상을 보아라. 눈을 뜨고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느니. 열린 눈으로 들어오는 빛은 먼저 심상을 어지럽히고, 다음으로 물상을 어지럽힌다. 빛의 굴절과 반사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삼라만상의 참모습을 보려거든 눈을 감고 보아야 한다..... .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스승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이사부에게 스승은 기억에 아슴아슴 남아있는 아버지보다도 더 깊은 존재였다.

이사부는 소년시절부터 무사의 길을 꿈꾸었다. 나이 일곱 살에 청소년들만 모여서 집단생활을 하는 일종의 연령급단조직(年令級團組織)에 들어갔다. 태생적으로 무골이었던 그는 유난히 맑은 기와 명석한 머리로 미처 열 살이 넘기도 전에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되던 무렵 계림(鷄林)에 있는 소도제단(蘇塗祭壇) 무사단의 소년무사로 선발됐다.

이사부는 거기에서 평생을 지켜갈 가르침을 준 스승 경천선사(敬天禪師)를 만났다. 선사의 첫 인상은 흡사 천년 묵은 멧돼지처럼 거칠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반질거리는 정수리 양 옆에서 자라나 허리춤까지 흘러내린 허연 두발 용모도 그렇고, 누더기 차림에 사시사철 맨발인 외양은 얼핏 보아서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심산 햇볕과 개울물빛에 검게 탄 얼굴이 영락없는 짐승의 몰골이었다. 그러나 가늘고 깊은 눈매만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할 만큼 날카로웠다. 동악(東嶽)의 중턱 바위굴에서 기거하는 선사는 산짐승들을 마음대로 부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선사는 닷새에 한 번 꼴로 소도에 내려와 무사들을 가르치고는 돌아갔다. 이사부를 처음 만났을 때 선사는 다짜고짜 지팡이로 어깨를 한차례 내리쳤다.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했지만, 선사는 끝내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이사부 역시 스승에게 첫 만남에서 어깨를 내리친 까닭을 물어보지 않았다.

경천선사는 처음부터 이사부의 출중한 재능을 알아보았다. 웅숭깊은 눈으로 한동안 지켜보던 선사는 어느 날부터 이사부를 동악으로 데리고 들어가 따로 무예와 낭가를 가르쳤다.

사람은 몸(精)․마음(氣)․정신(神)으로 이뤄진 존재다. 낭가는 이 세 가지를 다 같이 밝고 충만하게 만드는 수련이다. 정(精)은 하복부에 뿌리를 두고 온몸에 퍼져 있다. 기(氣)는 가슴을 중심으로 온몸에 퍼져 있으며, 신(神)은 머리를 중심으로 전신에 퍼져 있다. 정(精)의 뿌리가 되는 하복부를 하단전이라 부른다. 가슴은 중단전, 머리는 상단전이라 일컫는다. 정․기․신과 상․중․하 삼단전을 함께 닦아 심신(心身)을 지극히 밝게 만드는 것이 낭가수련의 기본원리다...... .

이사부는 경천선사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받아들였다. 경천도 그런 이사부를 대견스러워하며 무예와 기공, 그리고 술법까지 수련토록 했다.

이사부가 그런 과정에서 낭가 다음으로 나아가 익힌 것은 방사법(放射法)이었다. 방사법은 내공에 기인한 기를 방사하여 원거리에 있는 물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술법의 일종이다. 방사법의 특성을 살려서 멀리 있는 물체의 윤곽이나 종류를 알아내는 것이 통견원문술(通見遠聞術)이다. 수년간의 수련과정을 통해서 이사부는 상당한 수준의 투시력과 도청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아주 먼 곳의 일까지 생생히 보고들을 수 있는 천리안을 얻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산으로부터 불어내리는 바람 속에 언뜻 겨울 냄새가 났다. 먼 곳에 벌써 겨울이 서성거리고 있구나.....이사부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렇게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

“장군!”

상념에 젖어있던 이사부의 등 뒤에 누군가 다가와서 불렀다. 눈을 떴다. 출정의 때가 이르고 있음인가.

“장군. 소장 직삼이옵니다.”

이사부가 몸을 일으켜서 뒤로 돌아섰다. 바위산 정상까지 올라온 아장 직삼이 부복하고 있었다.

“왔느냐? 배 짓는 일은 이제 다 되어 가느냐?”

“예. 스물한 척 전선제작이 다 마무리되어 가나이다. 마지막 한 척이 모든 건조과정을 거쳐 멍아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사옵니다.”

직삼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삼복더위 속에서 그렇게 많은 배를 짓는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장마가 길지 않았고, 폭염도 그리 심하지 않았던 덕분에 작업은 영일 없이 강행되었다. 두꺼비 등짝처럼 거칠어진 직삼의 손을 보는 순간, 이사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시커먼 몰골이 지난 몇 달 동안 조선장에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수고가 많았다. 군사들의 훈련도 진척이 많이 되었을 터. 내일 군사훈련 상태와 함께 전선제작 현황을 일제히 점고할 것이다. 준비하라.”

“분부 받자와 차질 없도록 준비하겠나이다.”

“이제 출정 날을 잡아야 할 것인 즉, 아장의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 언제가 좋겠느냐.”

직삼은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늦가을이지만 아직은 바닷바람이 그리 차지 않으니 조만간 출병하여도 무방할 듯싶사옵니다.”

“그렇구나. 우산국 복속이 더뎌지므로 폐하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들을 하루빨리 복속하여야 고구려와 말갈의 침범을 방비하는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출정할 수 있도록 채비하라.”

“알겠나이다.”

“뒤따라 하산할 것이니 먼저 내려가 기다리라.”

“하오면, 소장 먼저 물러가 있겠나이다.”

직삼은 일어나 한차례 목례를 하고는 몸을 돌려 바위산을 내려갔다.

이사부는 바다를 향해 돌아서서 심호흡을 했다. 이제 비로소 우산국 정벌이 시작되는가...... .

바다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위대한 스승이다. 바다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여러 가지 중에서 가장 큰 가르침은 겸손이다. 드넓은 바다의 크기만으로도 인간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를 되새기기에 충분하다.

바람이 자는 동안 바다는 가없는 평온함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러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커다란 용틀임으로 분노가 무엇인지를 무섭게 가르친다. 바다는 무궁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그 경계를 암시한다. 오만함에 갇혀 대자연의 위력을 허술히 아는 자에게 바다는 그 큰 힘을 여지없이 드러내어 보여준다. 바다를 보고도 끝내 ‘겸손’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바보 천치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곧 출병이다. 이사부의 가슴속에서 불현듯 울릉도로 잡혀간 산단화의 모습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지금 그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혹여 그 사이에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그녀를 만난 것이 숙명이었다면, 이 별리의 운명은 또 왜 이렇게 가혹하게 이어지는 것일까.

이사부는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에는 그리움을 삭히며 그렇게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주청(州廳)으로 돌아온 이사부는 우선 수하들로부터 자리를 비웠던 며칠간의 업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군장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하여 출정준비를 잘 마무리해가고 있었다. 산에서 보낸 며칠 동안이나마 용맹정진으로 낭가수련을 한 끝이라 몸에는 기가 충만했고, 정신도 맑았다.

저녁 무렵 직삼이 중년의 사내 하나를 데리고 왔다. 함께 온 중년남자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쥐 상으로 생겨 꾀가 흐르는 관상을 지닌 자였다.

“장군. 우산국 출정에 꼭 필요한 인물을 데리고 왔나이다.”

“출정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니 누구더냐?”

“예. 이 자는 근동에서 알아주는 장사꾼으로서, 연전 울릉도를 한 차례 직접 다녀 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옵니다.”

직삼과 함께 온 사내가 대청 저만큼에서 앞으로 숙인 몸을 연신 굽실거렸다. 울릉도를 왕래한 사람이라는 말에 부쩍 호기심이 일었다. 이사부가 사내를 향해서 물었다.

“그래, 이름이 무엇이오?”

사내는 고개를 더욱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목소리가 무척 가늘었다.

“소인 명진(明珍)이라고 하옵니다요.”

“그래, 울릉도엘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시었소?”

“예. 지금부터 다섯 해 전쯤에 몇몇 장사꾼들과 함께 거친 물길을 헤치고 어렵사리 한 차례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요.”

“무슨 연유로 갔소이까?”

“그야 물론, 울릉도에 귀한 향과 약재가 있다고 해서 물건을 구할 요량으로 갔다 왔습지요.”

이사부는 사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낱낱이 들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일어나서 가까이 다가오시오. 이야기를 좀 더 들어야 하겠소이다.”

사내는 이사부의 위엄에 몸이 굳었는지 선뜻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직삼이 그를 일으켜 세워 떠밀듯 앞으로 데리고 나와 이사부 앞에 앉혔다.

“무......무엇이든지 하문하시옵소서.”

사내가 한참 뜸을 들인 다음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의 얇은 입술과 잰 입놀림으로 보아 필시 말이 어눌한 사람 같지는 앉았다.

“직접 본 울릉도의 모습은 어떠하였소?”

“제가 그때 본 울릉도는 천혜의 요새였습니다요. 얼핏 보아서는 바다에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뱃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요.”

“병풍처럼 암벽이 둘러져져 있다?”

“예. 제가 탄 배가 겨우 당도한 곳은 섬의 서남 끝 골계라는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곳이 우산국의 중심지 같았습니다요.”

“골계? 그 지명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오?”

“골짜기와 계곡이라는 말의 첫 글자를 합쳐서 골계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요. 남향이라 사철 날씨가 따뜻한데다가 비파산 양 쪽 긴 골짜기에 물이 많이 흘러 비록 비탈일지라도 기름진 땅이 많아서 거민(居民)들이 상당수에 이른 것 같았습니다요.”

“그래...거기 사람들의 행색은 어떻더이까?”

“풍족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냥저냥 먹고 살만 한 것 같았고, 거민들을 다스리는 우해왕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요. 하지만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깊어서 거기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였습니다요.”

“혹여 그 우해왕이라는 자를 보았소?”

“직접 보지는 못하였고, 말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요. 일곱 척 장수에다가 도술(道術)을 능히 쓸 줄 안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것 말고는 들은 이야기가 별반 없습니다요.”

“골계 지역 이외에 다른 곳을 살펴본 적은 있소?”

“송구하오나 다른 지역을 좀 더 다녀보려고 했으나, 섬사람들의 경계심이 너무 심하여 그리하지 못하고 섬에 도착한지 불과 사흘 만에 쫓겨나다시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요.”

“그랬구려. 어쨌든 도움이 될 말을 해주어서 고맙소이다.”

그때 곁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서 있던 직삼이 나서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군주님. 명진이 군주님을 모시고 함께 출정하기를 소원하고 있사오니 곁에 두고 부리시면 어떨까 합니다만.”

이사부가 사내를 향해 물었다.

“정녕 나와 함께 우산국 정벌 길에 나설 의향이 있소?”

그러자 명진이라는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여성의 목소리인 양 더욱 가늘고 높은 음성으로 말했다.

“거두어만 주신다면, 소인 군주님을 기꺼이 받들어 모시겠습니다요.”

가까이 두고 함께 하면 도움이 되겠구나....이사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시종장(侍從長)으로서 함께 하여 출정의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하시오.”

“황감하옵니다요, 군주님.”

명진은 기쁜 얼굴로 넙죽 절을 했다. 그가 직삼과 함께 물러간 다음 이사부는 잠시 생각에 젖었다. 울릉도....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섬이라..... . 공략이 결코 쉽지 않겠구나. 게다가 어렴풋이 짐작했던 대로 우해왕이란 자가 도술을 쓴다하니 정벌전쟁의 전도가 더욱 불가측하구나. .... .

*

“장군. 연무장과 조선장의 점고 채비를 다 마쳤나이다.”

직삼이었다. 기별을 기다리고 있던 이사부는 지휘봉을 들고 처소를 나서서 가벼운 몸놀림으로 주청 앞에 대기하고 있던 말에 올랐다.

“먼저 연무장으로 가자.”

“예.”

직삼은 앞장서서 이사부를 해변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연무장에는 병사들이 군별로 나누어 도열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 동안의 훈련으로 인해 기강이 꽤 잡힌 단정한 모습이었다.

맨 처음 연무시범은 상대 전선에 불을 붙이기 위한 불화살 공격이었다. 목궁(木弓)과 각궁(角弓), 죽궁(竹弓)이 모두 동원되었다. 살 끝에 불꽃을 단 화살들은 날아가 미리 설치해놓은 목표지 짚더미에 정확하게 꽂혀 방화하였다.

군사들은 다음으로 해전에 필요한 무기들을 들고 나와 연무시범을 보였다. 전선끼리의 근접전에 대비해 월도(月刀), 협도(狹刀) 등 자루달린 칼을 비롯하여 기창(旗槍),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톱창 등 긴 창 종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무기를 든 병사들의 몸놀림은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익숙하여 그 동안의 훈련 양을 가늠케 했다.

다음은 근접전에 대비한 동작시범이었다. 병사들은 단검(短劍)과 납작도끼, 손도끼, 작은 손도끼, 쇠도리깨, 철퇴 등을 사정없이 휘둘러 위압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바람을 가르는 군사들의 연무동작을 지켜보며 이사부는 자못 흐뭇한 마음이었다. 이 정도면 출정에 큰 지장이 없겠구나.... .

“수고들 많았다. 오늘 연무시범의 모습을 보니 과연 강군으로 조련되었도다. 조만간 출병의 나팔소리를 울릴 것이니 긴장을 늦추지 말고 충실히 대비하라.”

이사부는 밝은 표정으로 장졸들을 격려하고 연무장을 떠나 조선장으로 향했다.

자가곡 조선장에는 이미 제작과 정비를 마친 스물 한 척의 전선이 깃발을 펄럭이며 대기하고 있었다. 이사부는 직삼의 안내로 전선들을 하나하나 점검하였다. 통나무를 많이 써서 지은 전선들은 나무랄 데 없이 튼실해보였다.

*

병사와 조선장 점고가 끝난 다음 이사부는 휘하장수들을 불러 군의를 열었다.

“병법에서는 수(數)를 모아 산(算)을 쌓아놓고, 그 산을 가지고 비교하여 우위가 됐을 경우를 일러 승산(勝算)이라고 부른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적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수가 많다 할 수 없으니, 산을 헤아릴 때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장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가 이제껏 취득한 정도의 수만 가지고도 승산이 있다고 보느냐? 의견을 내어보라.”

군장과 부장들은 잠시 긴장한 모습을 보이며 술렁거렸다. 잠깐 눈치를 보는 사이에 좌군장이 나섰다.

“소장의 견해를 말씀 올리겠나이다. 우산국이 어떤 나라인지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지난번에 도적처럼 떼를 지어 몰려온 행색들로 미루어보건대, 결코 크게 평가할 군대는 못된다고 사료하옵니다. 아군이 지금 수준의 전비와 연무로 출정하면 반드시 대승을 거둘 것이옵니다.”

이어서 우군장이 나서서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해전에서의 취약점을 충분히 보완했고, 전선도 스무 척이 넘도록 장만하였으니 우산국 정벌에는 무리가 없을 듯하옵니다.”

좌우 군장이 나서서 장담을 하니 군의에 참석한 장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장 하나가 나서서 말을 보탰다.

“옳사옵니다. 아군이 바다를 무사히 건너가기만 한다면, 해전이든 육전이든 두려울 것이 없사옵니다. 한낱 작은 섬에서 살아온 야만인들이 발악하여 방비를 한다 한들 몇 식경이나 용을 쓰겠나이까? 쾌승이 분명하옵니다.”

사기가 충천한 좌중이 모두 그 말에 동조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부가 나서서 다짐을 하듯 말했다.

“제장들의 결기가 모두 그러하니 흡족하도다. 그렇다 하더라도 출정채비에 추호의 차질이 없도록 끝까지 만전을 기하라.”

“알겠나이다, 장군!”

장수들은 하나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전의를 다졌다. 이사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출정준비가 끝났으므로 이제 출병의 날짜만 잡으면 모든 게 마무리된다. 폐하의 근심을 생각하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적당한 날짜가 언제쯤이 되겠는지 의견들을 말하라.”

중군장 무덕이 입을 열었다.

“중군장 아뢰겠나이다. 소장이 고깃배를 부리는 어부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사흘 뒤쯤부터 며칠 동안 바다가 잔잔할 것이고, 그게 아니면 보름 뒤쯤이나 되어야 바다가 다시 고요할 것이라고 하옵니다.”

“사흘 뒤나 보름 뒤쯤이라.... .”

이사부가 눈을 껌벅거리며 생각하고 있는 동안 아장 직삼이 나섰다.

“소장이 생각하기로는 사흘 뒤에 서둘러 출정하심이 가한 줄 아옵니다. 우산국 정벌 대업이 전선제작 문제로 시간이 지체되어 왔는바, 출정채비가 다 끝난 지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좌군장이 나섰다.

“소인 좌군장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하루속히 우산국을 복속하여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는 것이 도리인 줄 아옵니다.”

좌군장의 말을 듣자, 좌중은 모두 그의 말에 공감하는 눈빛을 지어보였다. 장수들의 표정을 잠자코 톺아보던 이사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소리로 말했다.

“사흘 뒤 새벽에 출정하기로 결정한다. 제장들은 출정날짜와 시각에 맞추어 단 한 가지라도 빠진 일이 없는지 치밀하게 출정채비를 점검하여 차질이 없도록 하라.”

“예. 알겠나이다.”

군장 부장들은 일제히 복종의 예를 갖추며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오늘 밤은 군사들을 배불리 먹고 마시게 하여 사기를 북돋우라. 다만 배를 타고 멀리 나가야 하는 출정인 만큼 과음으로 인해 뱃길에 멀미가 덧나게 해서는 안 될 것인 만큼 적절히 통제하라.”

“예.”

회의를 파하고 나니 마음이 허전해졌다. 출정준비를 위해서 겪어 온 지난 세월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병사들을 인솔하여 나서는 출정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배를 지어야 하고 해전에 대비해 군사들을 따로 조련해야 하는 이번 출정채비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번거로움이 있었다.

혹서에 진행된 출병준비 과정을 잘 견뎌 준 군사들이 대견스러웠다. 군사들 중에는 나라를 위하는 투철한 사명을 지켜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사부는 그런 일련의 풍조야말로 신라국을 크게 부강토록 할 것이라는 믿음을 키우고 있었다.

처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사부의 뇌리에 우산국에 사개로 갔다가 무참히 목이 잘린 청년병사 준모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우해의 잘못을 꾸짖었다는 그의 기개가 떠올라 새삼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대의 우국충정은 이제 머지않아 열매를 맺으리라. 내 결코 그대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부는 혼잣말을 하며 투지를 다졌다.

-연재 8회로 이어집니다-

<註>

* 들숨(흡식吸息) * 상단전(머리) * 날숨(호식呼息) * 낭가(郎家, 풍류도風流道, 국선도國仙道) * 수기(水氣) * 연령급단조직(年令級團組織, 촌락 또는 부족단위로 일정한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모여 단체생활과 공동의 의식을 수행하면서 가무와 무예를 익히는 단체. 나중에 화랑도가 됨) * 소도제단(蘇塗祭壇, 신성한 기도장소) * 동악(東嶽, 토함산吐含山) * 멍아(돛을 세우는 디딤바닥) * 골계(곡계谷溪, 곧계, 골깨) * 톱창(미늘쇠 창) * 납작도끼(판상월부版像鉞斧) * 손도끼(수부手斧) * 작은 손도끼(소수부小手斧) * 철퇴(鐵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