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  휘 (安 輝 / 본명 安在輝)                   그림:   문   악   보

-이사부, 우산국을 정벌하다 -제8회-

3.2 출정

예측한 대로 바다는 고요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실직 포구 앞바다에는 자가곡 조선장에서 옮겨진 스물 한 척의 전선이 띄워져 있었다. 선단이 출정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백성들이 구름같이 몰려나와 무운건승을 비는 환송행렬을 이루었다. 남편이나 자식, 또는 아비를 바다 한 복판 전쟁터로 내 보내는 백성들 중에는 진작부터 훌쩍거리는 모습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훈련을 거듭해온 탄탄한 정벌대의 위력을 믿고 승전을 확신하는 분위기가 우려를 압도했다.

출정에 앞서 대장선에서는 출정의식을 겸한 간단한 용왕제가 치러졌다. 뱃머리에는 금방 찐 백설기가 담긴 시루와 함께 칼을 대지 않은 과일, 육포 등이 진설되고 정성으로 빚어낸 조라술이 올려졌다.

이사부는 정성을 다하여 동해를 향해 절을 올렸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장도를 굽어 살피시어 정벌의 길이 시종 여의하도록 해주시옵소서..... . 이사부의 입에서 간절한 기원이 되뇌어졌다.

이윽고 희생을 바칠 시간. 명진이 미리 준비한 중돼지 한 마리를 끌고 나와 중군장 무덕에게 넘겼다. 한낱 짐승일 뿐인 돼지도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먼저 알았는지, 꽤 시끄러운 소리로 꽥꽥 비명을 질러댔다. 무덕이 넘겨받은 돼지를 대장선 뱃머리에 모로 눕혀놓고 한 칼에 목을 날려 머리를 바다에 떨어뜨렸다. 머리가 잘린 돼지의 목에서는 시뻘건 피가 콸콸 솟아올라 뱃머리를 적셨다. 해변에서 지켜보던 백성들도 양손을 부지런히 비비며 바다를 향해 거푸 절을 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도 배를 띄우기에 적당했다.

이윽고, 대장선 뱃머리에 늠름하게 앉아있던 이사부가 벌떡 일어나 지휘봉을 치켜들고 출정명령을 내렸다.

“전군! 출정하라!”

이사부의 우렁찬 목소리가 뱃전을 때리자 곁에 서 있던 두 명의 기수가 푸른 색 ‘전진’ 깃발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그리고 고수(鼓手)가 북채를 힘차게 휘둘러 출정을 알리는 고고성을 울렸다. 대장선의 출정명령을 받은 스무 척의 전선에서 일제히 푸른 깃발이 올려지고, 선단(船團)은 돛을 올려 간단없이 동해 한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다.

뭍에 남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흩어지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부디 이기고 살아서 돌아오시오!”

“우산국을 반드시 복속하여 오시오!”

“적들을 쳐부수어 승전하고 귀환하시오!”

저마다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던 어느 틈엔가 떠나는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낙들의 참았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군중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갔다.

전쟁이란, 늘 희비를 함께 달고 다니는 가장 치열한 인간 삶의 한 형태다. 가슴 터지는 희열로 돌아올 것인가, 평생을 안고 갈 비극을 안고 귀환할 것인가....아니, 이 길이 아주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예 돌아오지도 못할 영원한 이별길이 되고 말 것인가. 앞날을 끝내 알 수 없기로야 출정식만한 장면이 또 어디 있을까.

이사부는 선단이 나아가고 있는 바다 한복판을 응시했다. 이틀이다. 앞으로 이틀 동안은 이 바다가 조용해줘야 한다. 물때와 기상의 주기로 보아서 괜찮을 것 같다는 예측이 나와서 그를 믿고 결행한 출정이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다를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바다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거스르는 발칙한 오만이요, 천지신명에 대해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망발이리라.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디 이 바다가 최소한 앞으로 며칠 간 잠잠해주기만을 기원하는 것뿐이다. 이사부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우산국이 보입니다! 울릉도가 보입니다!”

대장선 뱃머리에 앉아 망을 보던 병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벌군 선단이 실직주 포구를 떠난 지 꼭 하루 하고 반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전선 그 앞 쪽으로 아득한 곳에 흐릿한 점 하나가 보인 것도 잠깐, 섬은 시나브로 신비에 싸인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뭍을 떠난 지 만 하루가 다가올 무렵 잠시 파도가 조금 높아져서 한동안 군사들이 고생을 한 적은 있었지만, 바다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멀미에 특별히 예민한 몇몇 장졸들이 탈을 일으켜 토하거나 힘들어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사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내다보았다. 저만큼 수평선 가까운 바다위에 흰 구름을 높다랗게 머리에 이고 떠 있는, 거대한 군선처럼 생긴 섬이 보였다. 순풍을 탄 전선이 나아가는 속도로 보아서는 반나절이면 넉넉할 거리였다.

이사부는 지휘봉을 높이 치켜들고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전군! 전투준비에 돌입하라!”

고수가 기운찬 동작으로 북을 울리는 가운데, 기수가 황색 깃발과 푸른 깃발을 번갈아가며 힘차게 흔들었다. 스물 한 척의 배에 나눠 탄 병사들은 일제히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며 앞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사부는 손짓으로 명진을 불렀다. 명진이 이사부 앞에 예를 갖추고 섰다.

“자, 이제 섬에 다다랐으니 저들의 본거지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네가 말하던 골계로 접근하려면 오른 쪽으로 우회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맞느냐?”

“예. 맞습니다요. 장군께서 말씀하신대로 오른 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요.”

명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명진의 말을 받아서 직삼이 말했다.

“섬을 적선으로 가상하여 선단의 전투대형을 유지하면서 큰 원을 그리듯이 서서히 우회하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적의 전선이 언제 어디에서 출몰할지 모르오니.... .”

“옳다.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말고, 그리 하도록 하라.”

직삼은 기수에게 일러 선단의 대오를 유지한 채 우회하여 전진하라는 신호를 보내게 하였다. 모든 군사들이 섬을 향하여 경계를 하고 있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울릉도는 명진의 말대로 평범한 섬이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울릉도는 섬이 아니라 마치 바다 한 가운데 우뚝 막아선 거대한 암벽 성채 같았다. 섬 한 가운데 구름 사이로 솟은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이사부가 명진에게 물었다.

“성인봉(聖人峰)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요.”

다시 마주하게 된 울릉도에 대한 감회가 새로운 듯 명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조금 더 나아가자 산은 하나가 아니었다. 섬의 중앙부근에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여러 개의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산봉우리들을 중심으로 놓고 뺑 돌아가며 둘러쳐진 가파른 암벽은 마치 강인한 갑주로 몸을 단단히 감은 장수처럼 외부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을 듯이 완강하여 숨이 턱 막혔다.

“과연 철옹성이로구나.”

이사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쏟아냈다. 가파른 암벽으로 완전하게 둘러쳐진 섬의 형상을 보고 군사들도 적잖이 주눅이 들었을 것이 분명하여, 슬며시 걱정으로 번졌다.

“병사들을 안심시키고 고무하라.”

이사부는 각 군장 부장들에게 병사들을 안심시키도록 명령을 내렸다. 기수가 부지런히 깃발을 흔들었다.

이윽고 섬의 전모가 드러나도록 거리가 가까워졌다. 선단은 오른 쪽으로 우회를 계속했다. 명진은 골계가 어디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대장선 앞에서 섬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울릉도 서쪽 근해에는 배가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해전에 능하다고 들은 바 있는데, 저들이 굳이 해전에 나서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선단이 우회하는 동안 시야에 들어온 섬의 모습은 깎아지른 암벽뿐이었다. 어찌하여 배가 한 척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

이사부는 잠시 섬을 향하여 엉버티고 서서 기를 쏘아 보냈다. 섬에서는 인마나 병장기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거친 파도 한 더미가 몰려 와서 대장선 뱃머리를 세차게 때렸다. 진작부터 하늘이 심하게 흐렸던 것도 아닌데, 별안간 성인봉 하늘 끝에서 두꺼운 먹구름이 일더니 선단을 향해 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바다가 느닷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도는 순식간에 정벌선단의 배들을 요동치게 했다. 병사들은 삽시간에 일어난 변고를 보며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탄식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사부는 바다 깊은 곳을 투시하며 기운을 살폈다. 과연 바다 속에는 무시무시한 귀기(鬼氣)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어도 수많은 원혼들이 무지막지한 흥분으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흔들리지 말라! 전군 계속 진군하라!”

이사부는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기에 의해서 갑자기 일어난 바다의 소용돌이이므로 잠시만 견디면 잠잘 것이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사부는 지휘봉을 휘둘러가며 흔들리지 말고 나아갈 것을 독려했다.

한동안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이번에는 앞쪽 섬 바닷가 암벽 위에서 솟구쳐 오르는 검은 구름뭉치 같은 것이 보였다. 구름뭉치는 빠른 속도로 선단을 향하여 날아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수많은 까만 점들의 무리였다.

“저것이 무엇이냐?”

이사부는 선단을 향하여 새까맣게 무리지어서 날아오는 것들을 향해 황급히 기를 쏘아 보냈다. 날아오는 것들은 여러 무더기로 나누어진 수천 마리의 새떼들이었다. 새떼들은 마치 멍석말이를 하듯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선단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장군! 새들이 날아옵니다! 새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선단의 하늘을 가득 메우다시피 몰려온 새들 중 맨 먼저 하얀 빛깔의 새떼가 전선을 향해 곤두박질치면서 일제히 고양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들이 합창하듯 내는 그 소리는 마치 귀신울음처럼 공포를 자아내면서 소름을 돋아나게 했다.

“괭이갈매기다!”

누군가가 새들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괭이갈매기? 이사부는 섬으로부터 갈매기 떼가 일제히 날아올라 돌연 전선을 향해 몰려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저 새떼들은 대체 어쩌자고 선단을 향해 돌진해오는 것일까?

순식간이었다. 가차 없이 몰려온 갈매기들은 예상치 못한 격한 날갯짓으로 전선에 있는 장졸들을 덮치듯 공격해왔다. 그들은 군사들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쪼았다. 설마 하고 방심하던 일부 군사들이 새들의 부리에 얼굴을 찍혀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 갈매기들이 미쳤나,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아장 직삼이 달려드는 갈매기를 어쩌지 못해 쩔쩔 매면서 소리쳤다. 전선에 나눠 타고 있는 군사들은 칼과 창을 겨눠 들고 막무가내로 달라붙는 새들을 막아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독수리도 아니고, 매도 아닌 갈매기들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해괴한 변고였다. 이사부는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대장선으로 날아든 새떼들을 향해 강력한 살기(殺氣)를 쏘았다. 새들 중 몇 마리가 살기에 맞아서 끼룩거리며 뱃전에 떨어졌고, 나머지 새들은 달아났다. 명진이 떨어진 갈매기 한 마리를 주워들고 왔다. 새는 흰 몸빛에 등과 날개는 어두운 청회색이었고, 황록색 부리를 갖고 있었다. 보통 갈매기와 비슷했지만, 꽁지에 검은 빛깔의 띠가 있는 것이 달랐다.

잠깐 사이에 또 다른 새떼가 대장선을 공격해왔다. 이사부는 새떼를 향해 다시 한 번 살기를 쏘았다. 이번에도 몇 마리가 뱃전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갈매기가 아니었다.

“앗! 깍새와 흑비둘기다!”

뱃전에 떨어진 새들을 손으로 들어보던 명진이 소리치듯 말하고는 새들을 들고 이사부에게 왔다.

“그 새들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느냐?”

“울릉도 사람들은 갈색이 나는 이 새를 깍새, 검은 새는 흑비둘기라 하였습니다요.”

깍새라는 새는 윗면은 검은빛이 도는 갈색, 아랫면 배 쪽은 흰색이었으며 이마와 옆머리 그리고 목은 흰색 바탕에 검정색 세로줄무늬가 있었다. 흑비둘기는 얼핏 검은 빛으로만 보였으나, 진주 빛이 나는 녹색과 광택이 있는 자색이 섞여 있었다.

“깍새와 흑비둘기? 독특한 이름이구나. 그나마나 이 새들이 왜 이렇게 미쳐서 병사들을 공격하는 것이냐?”

“소인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요. 새들이 왜 이러는지..... .”

대장선으로 날아들던 새들은 이사부가 쏘아대는 살기 공격에 물러갔지만, 다른 전선에서는 새들이 정말 악착같이 달려들어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바다는 아까보다도 더 파도가 높아져서 금방이라도 전선들을 엎어버릴 듯이 뒤흔들었다. 선단 여기저기에서 악악거리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직삼이 흔들리는 뱃전갑판으로 허겁지겁 기어왔다.

“장군! 일단 이 지역을 벗어나야 할 것 같사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나이다. 퇴각명령을 내리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이사부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의 이 상황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우해란 자가 술법을 쓴다 하더니 과연 대단한 도술가인 모양이다. 이미 놈에게 말려들었으니 계속 버티다가는 또 어떤 망측한 일을 더 당할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군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닐 터이니 일단 후퇴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이렇게 맥없이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신라국이 우산국을 반드시 점령해야 할 이유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고, 패퇴가 불러올 파장을 유추하면 더더욱 그랬다. 아니, 어쩌면 이번에 이렇게 덧없이 물러나면 다시는 이곳을 뚫어내지 못할 것 같은 예감마저 엄습했다.

“두려워 말라! 한낱 잡귀들의 장난이다! 돌파하라! 전군! 전 속력으로 돌진하라!”

이사부는 직접 북채를 잡고 힘차게 북을 두드려 진군을 독려했다. 기수들은 깃발을 더욱 힘차게 흔들었다. 병사들도 달려드는 새떼들과 사투를 벌였다. 바다는 들썩거리고, 하늘에서는 새떼들이 일제히 공격해오는 희한하고도 참담한 장면은 한동안 계속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새떼들이 일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바다도 훨씬 더 잠잠해졌다. 뒤덮었던 시커먼 먹구름도 조금씩 틈을 보이면서 하늘이 빠른 속도로 개고 있었다.

그때였다.

“적선이 나타났다! 전방에 적선이다!”

대장선 망루에 서있던 군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사부가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앞쪽에서 시커먼 우산국 군선들이 전투대형을 유지한 채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얼핏 세어보니 스무 척 가까운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뜬금없이 몰아친 풍랑과 난생처음인 날짐승들의 공격으로 혼비백산한 아군 전선들은 이미 전투대형을 흐트러뜨렸고, 군사들은 전의를 다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군! 전투대형을 갖추라! 적선을 총 공격하라!”

이사부는 북을 치며 전투대형 정비와 공격을 명했다. 기수들이 황색깃발과 붉은 깃발을 번갈아 흔들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달려온 우산국 군선들은 신라 전선들이 미처 선체를 가누기도 전에 거침없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우산국 군선들은 대오에서 떨어져나간 신라 전선들부터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활을 쏴라! 물러서지 말라! 적들의 공격을 막아라!”

이사부는 크게 외치며 독전을 계속했다.

잠시 후 저 만큼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우산국 군선 하나가 중군의 한 전선 옆구리를 사정없이 들이받는 모습이 보였다. 그 다음 순간 공격을 당한 중군 군선은 거짓말처럼 옆으로 기울더니 큰 물결을 일으키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배에 타고 있던 군사들이 바다에 떨어져 허둥대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전투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느닷없는 파도와 새떼들의 공격으로 이미 전의를 상실한 군사들, 대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전선들로는 더 이상 전투를 계속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이사부는 결국 퇴각을 결심했다.

“퇴각하라! 배를 되돌려라! 대오를 정비하라!”

고수가 북을 쳤다. 기수가 분주히 흰 깃발을 흔들어 퇴각명령을 하달했다. 대장선의 명령을 받은 전선들이 일제히 파도를 헤치며 어렵사리 뱃머리를 돌려 물길을 되짚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산국 군선들이 달아나는 신라국 전선들을 잡으려고 악착같이 뒤따랐다. 대장선 뱃머리를 돌리는 도중에 살펴보니 저 멀리서 또다시 회선하던 좌군 전선 두 척이 우산국 군선에 차례로 들이받혀 기우뚱거리다가 기어이 뒤집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무리하지 말라! 침착하게 움직여라!”

이사부가 목이 쉬도록 크게 소리쳤다. 고수가 북을 치고 깃발을 들어 부지런히 명령을 하달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우산국 군선들의 가차 없는 공격과, 신라국 병사들의 필사적인 응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군사들이 생지옥 같은 울릉도 앞 해역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안 이사부는 가슴을 치며 통한을 삼키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무엇이....... .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전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연재 9회로 이어집니다-

<註>

* 깍새(슴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