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 휘 / 그림 문 악 보

제3장- 철옹성(鐵甕城)

3.3 패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사부가 이끄는 신라국 선단은 병사들의 진을 완전히 다 뺀 다음에야 울릉도 인근 해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울릉도 근해를 다 빠져나오자 우산국 군선들은 더 이상 추격해오지 않았다.

육지 쪽 동해 한 가운데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오니,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얄밉도록 평온해졌다.

전선 갑판 위에는 지쳐 널브러진 병사들로 가득했다. 느닷없이 일기 시작한 엄청난 파도 속에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괭이갈매기, 그리고 깍새와 흑비둘기라 불린다는 새들의 공격은 좀처럼 이해가 가는 일이 아니었다. 파도와 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단 한 차례 우산국 군선들의 공격에 전의를 잃고 허둥지둥 도망쳐온 패잔병들의 행색은 처참했다.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멀미를 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였으니, 전선 위는 온통 병사들이 토해놓은 오물로 악취가 진동했다.

한나절도 더 계속된 혼돈에서 겨우 벗어난 이사부는 남은 전선의 수를 세어보았다. 적선에 부딪혀 파도 속으로 사라져간 중군 전선 한 척과 급하게 회선하던 중에 공격을 받아 전복된 좌군 전선 두 척을 제외하고, 대장선을 포함하여 열여덟 척의 배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몇 명의 군사들이 희생된 것인가.....이사부는 속이 쓰렸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울릉도에는 접안조차 해보지 못한데다가, 우산국 병사들과의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제대로 치러보지 못한 채 적지 않은 수의 군사들만 수장시키고 돌아서다니..... . 형언키 어려운 통한이 가슴을 후벼 팠다.

참담한 심정으로 대장선 뱃머리에 우두커니 서서 말을 잊은 이사부에게 직삼이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더욱 처절한 절망과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

“장군! 가까스로 구출된 일부 병사들을 빼고 쉰일곱 명의 병사들이 실종되었나이다.”

“쉰일곱 명이냐. .....참으로 애통하구나. ......각 군장 부장들을 모두 불러라.”

“예. 분부 시행하겠나이다.”

북을 치고 깃발을 들어 군장 부장들을 대장선으로 불렀다. 장수들을 모으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부장들 중에도 선단을 공격해온 새들에게 얼굴을 찢긴 자가 둘이나 되었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던 기괴한 현상이었다. 짐작컨대, 자연적으로 일어난 우연한 재해현상이 아니라면 우해라는 자가 도술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장들의 판단을 듣고자 한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느냐?”

장수들은 한동안 서로 눈치만 볼 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끝에 좌군장이 입을 열었다.

“장군.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일단 회군을 한 다음 새로운 전략과 전비를 갖추어서 재출정하심이 가한 줄 아옵니다. 무엇보다도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어 있는 까닭에 지금 재차 공격하는 일은 무모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중군장 무덕이 좌군장의 말을 받아서 의견을 내놓았다.

“소장의 의견도 좌군장과 같사옵니다. 무엇보다도, 폭풍이 불어온 것도 아닌데 우산도 앞바다가 요동을 친 까닭을 알 수가 없고, 섬으로부터 새들이 일제히 공격을 해온 이유 또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으니 그 방책 또한 현재로서는 세울 길이 없는 상태이옵니다. 공포에 질린 군사들을 안심시켜 사기를 북돋울 방안이 없는 한 당장 재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옵니다. 일단 하슬라로 돌아가 울릉도를 공략할 새로운 방도를 찾는 것이 옳을 것으로 믿사옵니다.”

중군장의 이야기를 들은 장수들은 모두 그 말에 찬동을 하는 낯빛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전개에 당황하기는 이사부도 마찬가지였고, 느닷없이 요동치는 바다와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새떼들, 그리고 깎아지른 암벽과 빽빽한 구릉 천지인 섬의 지형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또다시 섬으로 진격하는 것은 승산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이사부는 철군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군 회군한다.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를 게을리 하지 말고 가능한 빨리 실직 포구로 돌아가도록 서두르라.”

군장 부장들은 명령을 하달 받고 모두 제 자리를 찾아서 돌아갔다.

회군 깃발을 올리고 난 뒤 뭍을 향해 나아가는 선단을 이끄는 대장선 위에서 이사부는 무참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런 이사부의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광막한 바다는 무심히 출렁거리고 있었다.

*

실직주 포구에 선단을 정박시키고 하슬라주 주청으로 돌아온 이사부는 그날 저녁 우선 왕에게 전황을 보고할 장계(狀啓)를 올리기 위해 죽간과 붓, 벼루, 먹을 펼쳐놓고 앉았다. 왕에게 올릴 장계에는 난관을 헤쳐 나갈 방책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므로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할 지 당장은 막막했다.

어려움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바다를 건넌 정벌이 그렇게 뜻하지 않은 난관을 만나 허망하게 좌절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한편으로는 괴이한 액난을 돌파하지 못하고 우산국 병사들과의 단 한 차례 조우에서 패퇴한 일은 군문의 장수로서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반추해보았다. 들썩이는 바다와 미쳐 달려드는 새떼를 이기지 못한 일부터 예삿일이 아니다. 그 혼돈의 틈새에서 공격을 받아 끝내 신라군이 패퇴한 일 또한 결코 범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그 모든 해괴한 일들이 우해라는 자의 술법에서 기인했다면 이야말로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우해라는 인물이 그 정도로 높은 교령술(交靈術)을 구사하는 대가였단 말인가..... .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사부는 밤이 늦도록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는 우산국 정벌과 관련하여 드러난 문제점 중에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따져 들어갔다. 신라군 전선의 수나 성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해전이나 상륙전을 대비한 병사들의 훈련도 지금 정도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오랜 분석 끝에 이사부는 무엇보다도 우산국에 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결국 수(數)가 부족했으니 이길 만큼의 산(算)을 쌓지 못한 것이다. 울릉도에 대한 지리정보도 태부족했고, 특히 왕을 참칭하면서 울릉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너무 없었다. 그가 쓰는 도술에 대한 깊이조차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서, 우해의 술법을 막을 방도를 찾는 일부터 현재로서는 지난한 과제였다.

이사부는 결국 울릉도의 실태와 우해에 관한 정보를 소상히 파악한 다음 약점을 찾아 공략할 방안을 세우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최종 판단이었다.

이사부는 왕에게 올릴 장계를 써내려갔다.

‘소장의 불민함으로 우산국 정벌 길에서 일차 패퇴하여 폐하께 근심을 끼치게 된 참괴한 일로 장계를 올리나이다. 폐하의 엄명을 쾌쾌히 수행치 못하고 성심을 어지럽히었사오니 소장 죽어 마땅할 큰 죄를 지었나이다. 불충하기 짝이 없는 이 몸 엎디어 중벌을 청하옵나이다. ..... .’

장계를 다 쓰고 나니 밀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첫닭이 울었다.

*

날이 밝자, 서라벌 왕궁으로 전령을 띄워 장계를 올린 이사부는 울릉도 앞바다에서 실종된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어 줄 오구굿을 위해 차려놓은 자가곡 해변 제단으로 갔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세 척의 전선침몰로 실종된 쉰일곱 병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에는 듯 아팠다.

바다 쪽을 향해 마련된 해변제단 앞에는 반쯤 혼이 나간 행색의 희생자 가족들이 일찍부터 나와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그들은 이사부가 나타나자 폭발하듯 서럽게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는 소리가 이사부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면서 고통을 주었다.

굿을 시작하기에 앞서 시루떡과 포와 과일이 수북이 놓인 제단 앞으로 나가 정성을 다해 희생자들의 넋을 부르는 향을 피워 올렸다.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는 이사부의 가슴에 허무하게 희생된 병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핏물처럼 참담하게 고였다. 내 그대들의 희생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리라.... . 이사부는 제단 앞에 엎드려 결의를 다지고 또 다졌다.

이윽고 늙은 무당각시가 고깔모자를 쓰고 나와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넋을 건져 달래기 위한 수망굿으로 오구굿을 시작했다. 굿은 무당을 따라 온 화랭이가 요란하게 북을 치면서 시작됐다. 무당은 머리 부분에 수십 개의 방울이 달린 굵은 지팡이를 흔들면서 초혼가(招魂歌)를 불렀다.

“아아어아으....동해 광연왕 남해 광이왕 서해 광덕왕 북해 광태왕 용궁차사 일체 강신하되 하회 동참하소서. 아아 아으이....울릉도 앞바다에서 물에 젖은 영가(靈駕)님들......모두 육로로 환생하옵서 .......”

무당의 노래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 구슬펐다. 노래를 듣는 유족들은 모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오열 속에 자지러졌다.

한참동안 바다를 향해 혼을 부르는 노래를 하던 무당은 돌연 제단을 내려와 발길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물가에 이른 무당은 뒤 따라온 화랭이로부터 가늘고 긴 새끼줄 끝에 한쪽 발을 묶은 수탉과 쌀을 넣은 밥주발을 넘겨받아 물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떡, 밥, 과일 등을 손으로 뜯어 앞으로 던졌다. 무당의 노래는 더욱 애달픈 곡조로 이어졌다.

닭은 곧 헤엄쳐 뭍으로 올라오고 밥주발도 서서히 건져 올려졌다. 넋걷이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듯 무당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그러더니, 무당이 들고 있는 방울지팡이가 찰찰찰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무당은 물에서 건져진 밥주발을 앞에 놓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한동안 멍하니 굿판을 응시하던 이사부는 제단 근처를 떠다니는 숱한 혼백들의 움직임을 보았다. 무당은 희생자 가족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오랫동안 목 놓아 울며 천도의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

천도제가 끝난 다음, 이사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군장 부장들에게 명했다.

“병사(病舍)로 가자.”

장수들은 모두 이사부를 따라갔다.

병사에는 출정 중에 몸을 다친 일흔 명이 넘는 군사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사부는 병상을 일일이 다니면서 환자들을 어루만졌다.

그러던 중에 어느 병상에 이르러 화살에 맞은 발등이 심하게 곪아 걷지도 못하고 고통 받는 한 군사를 보았다.

이사부가 물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아무래도 제 발이 썩어 들어 가는가봅니다요. 욱신거리고 아파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요.”

이사부가 상처를 싸맨 헝겊을 풀고 상처부위를 살폈다. 상처에 고름이 꽉 찬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다. 이사부는 옆에 있던 의관(醫官)에게 일러 빈 그릇 하나와 물 사발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주저앉은 채 서슴없이 군사의 곪은 발을 양손으로 잡아 올렸다.

“좀 아프더라도 참아야 하느니라.”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이사부는 발을 꽉 움켜쥔 채 곪은 부위에 입을 대고 세차게 고름을 빨았다. 군사가 자지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이사부는 입으로 뽑아 올린 고름을 빈 그릇에 뱉었다. 같은 동작을 대여섯 번 반복한 이사부는 물그릇을 들어 물로 입안을 헹구어냈다.

이사부가 말했다.

“의관은 느릅나무 껍질을 찧어 이 상처에 붙여주도록 하라.”

옆에 있던 의관이 고개를 조아렸다.

“명을 받자와 즉각 시행하겠나이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군장․부장들이 이사부를 본받아서 부상당해 상처가 덧난 군사들을 찾아다니며 환부를 세세히 살폈다. 부상병들은 이사부 장군을 비롯한 장수들의 그런 행동에 감읍했다.

*

패장의 몸으로 돌아온 서라벌의 솔향기에는 여전히 피비린내가 났다. 이사부는 대전에 엎드려 왕에게 패전의 죄를 뉘우치며 간곡히 벌을 청했다.

“소장 우산국정벌을 위해 출정하였다가 울릉도 근해에서 패퇴하여 씻지 못할 큰 죄를 지었나이다. 중벌을 달게 받겠나이다.”

왕은 분기를 감추느라 서늘해진 표정을 애써 누그러뜨리며 하문했다.

“패전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느냐?”

이사부는 고개를 들어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릉도와 적장 우해에 대해서 알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았나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가 부족한 무모한 출정이었음이 뒤늦게 드러났사옵니다. 큰 죄를 지었나이다.”

이찬 등흔이 나서서 왕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예의 날카로운 음성이 이사부의 귓전을 때리며 차가운 바람을 일으켰다.

“동해의 해상권을 장악하는 일이 신라국에 얼마나 시급한지는 이사부 장군도 모르지는 않을 터. 이번 패전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중죄라 사료되옵니다. 엄벌을 내림이 가한 줄 아뢰오.”

왕은 이찬 등흔의 말을 들으며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껌벅거렸다. 좌중은 아무 반응이 없이 왕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전에는 팽팽한 긴장이 가득 흘렸다.

침묵을 깨고 나선 사람은 뜻밖으로 입종 왕자였다. 입종 왕자는 몸을 돌려 왕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금번 이사부 장군의 패전은 참괴한 일이 분명하옵니다. 하오나 대왕 폐하. 병서에 이르기를 일승일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사옵니다. 이사부 장군이 세운 지금까지의 혁혁한 전공을 감안해본다면 이번 패퇴는 다음의 승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옵니다. 하오니, 금번 패퇴를 거울삼아 재 출정토록 기회를 주심이 옳은 줄 아뢰옵니다.”

평소에도 이사부에게 따뜻한 입종이었으나, 대전에서 이사부를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나선 일은 의외였다.

이찬 등흔을 비롯한 귀족들과 대신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원종은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이사부를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한참 만에 왕이 입술을 뗐다.

“입종의 말에 일리가 있도다. 내 처음 패전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실망이 컸으나, 이사부 장군의 복명을 받고 보니 아주 낙망할 일은 아닌 것으로 사료되는구나. 아군의 피해가 치명적인 것은 아니고 하니, 이번 한 번만은 묵과하겠노라. 이사부 장군에게 한 번 더 출정준비를 할 것을 명하노라. 다시 준비를 하여 우산국을 기필코 정벌하라.”

이사부는 대전 바닥에 엎드린 채로 왕의 하명에 답했다.

“대왕폐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소장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다음 출정하여 기어코 우산국을 복속해내겠나이다.”

“두 번 다시 패전을 용서치 않을 것인 즉, 반드시 우산국을 복속하라.”

왕은 다짐하듯 말하고는 휭 하니 대전을 나갔다.

*

하슬라로 돌아온 이사부는 수하 장수들을 주청으로 불렀다. 심기일전하여 전쟁을 다시 준비할 시간이었다.

“우리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당한 일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요상한 변고였다. 태풍이 몰아친 것도 아닌데 바다가 요동친 일과, 섬에 사는 새들이 날아와 군사들을 공격한 일을 제장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부터 말해보라.”

좌중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장수들은 여전히 울릉도 앞바다에서의 야릇한 패전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는 듯 했다. 우군장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소장의 생각으로는 바다가 요동친 일이나 새들이 미쳐서 선단으로 달려든 일은 결코 우연한 사변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뭔가 초인적인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여겨지나이다.”

우군장의 말을 좌군장이 받았다.

“그렇습니다. 굳이 짐작해보자면 그 바다에는 울릉도를 지키는 신령이나 원혼이 있는 것 같사옵고, 새가 움직인 것은 최소한 울릉도에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 술사(術士)의 장난질이었음이 틀림없사옵니다.”

이번에는 아장 직삼이 입을 열었다.

“그러하옵니다. 우군장이나 좌군장의 말처럼 하늘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바다가 요동친 일은 바다 속 귀기의 발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새떼들이 날아와 공격한 것은 술법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옵니다.”

이사부가 직삼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 변고에 대한 제장들의 해석은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울릉도를 접근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방도가 있겠는지 견해를 말해보라.”

한동안 토론을 지켜보던 중군장 무덕이 나섰다.

“소장의 미련한 생각으로는 이렇습니다. 우선은 바다를 요동치게 하는 원혼을 달래어 줄 희생이 필요할 것입니다. 각 전선마다 희생으로 쓸 동물을 싣고 가서 적당한 지점에서 제물을 바치고 제를 올리는 것도 효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새떼들을 움직이는 섬의 술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그를 제어할 방도가 따로 없사오나, 새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장비를 쓰는 방법은 있을 것 같사옵니다. 즉, 새들이 주로 공격하는 부위가 병사들의 얼굴인 만큼, 공격을 해올 때 낯을 가릴 수 있도록 죽람(竹籃) 같은 죽세공품 장비를 준비해가는 것입니다.”

중군장의 의견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그가 말하는 방도가 과연 묘책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며 좌중은 한동안 침묵에 젖어 있었다.

아장 직삼이 다시 말했다.

“중군장의 의견은 일견 일리가 있으나, 완벽한 방도라고 여겨지지는 않사옵니다. 바다 속 원혼을 달래는데 동물 희생 정도로 효험이 있을 것인지, 새들의 공격을 대나무소쿠리로 다 막아낼 수 있을 것인지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할 듯하옵니다.”

이번에는 후군장이 나서서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소장의 아둔한 생각으로도 바다에 바칠 희생과 대소쿠리를 장만하는 정도로 해결이 안 될 경우의 낭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일단 출정하여 바다에 나서면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오라..... .”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사부가 매듭을 짓듯 말했다.

“제장들의 의견은 잘 들었다. 폐하의 근심을 생각하면 한시바삐 재출정을 서둘러야 할 일이나,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일이 다소 걸리더라도 이제부터 좀 더 집중적으로 묘책을 궁구하여 완벽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침몰해 잃은 세 척의 전선을 보충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 십여 척의 배를 더 짓고, 부서져 돌아온 전선들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일이 필요할 것이냐?”

아장 직삼이 나서서 대답했다.

“최소한 다섯 달은 걸릴 것으로 짐작되옵니다. 겨울이 막 닥쳐올 계절인지라..... .”

“다섯 달이라.... . 좋다. 그렇다면 아장 직삼은 오늘부터라도 곧바로 새 전선 제작에 착수하라. 부서진 전선도 일제히 점검하여 보강토록 하라. 또한 출병 장졸의 수를 늘릴 것이니, 열세 척의 전선을 새로 지어 모두 서른 한 척을 준비하라. 특히 예국(濊國)과 실직국(悉直國), 파조국(波朝國) 등 창해삼국(滄海三國)에서 해상활동을 해온 인력들을 모두 동원하여 투입하라. 엄동설한에 작업이 많이 더딜 것인 만큼, 아무래도 해동하고 난 뒤 어쩌면 내년 봄을 넘겨야 출병이 가능할 것이니 기일을 넉넉하게 잡으라.”

“예. 분부대로 시행하겠나이다. 병사들의 전투력도 다시 가다듬겠나이다.”

이사부는 그렇게 대답하는 직삼의 표정을 살폈다. 울릉도 공략 실패로 울증에 빠져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그가 다시 의욕을 품게 된 듯이 보여,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싶었다.

*

“군주님!....군주님!.....”

새벽녘이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디선가 이사부를 부르는 산단화의 애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안개만이 자욱할 뿐 그녀의 모습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산단화 낭자! 어디에 있소?”

이사부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산단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꿈이로구나...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산단화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군주님!.....어디에 계신가요? 왜 저를 구하러 오시지 않으시나요?”

“산단화 낭자! 도대체 어디에 있소?”

이사부는 온힘을 다해 팔을 내저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주변은 여전히 안개만이 자욱할 뿐, 산단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꿈이로구나, 꿈...... .

이사부가 잠에서 깨어났을 적에는 속옷이 축축이 젖었을 정도로 땀이 나 있었다. 정말 꿈이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아직 바깥은 칠흑어둠이 빽빽했다. 날이 새자면 좀 더 기다려야 할 시각이었다. 부르르 한 차례 진저리가 쳐질 만큼 새벽공기가 차가웠다. 이사부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결가부좌하고 앉았다.

단전호흡으로 한동안 숨을 고르고 난 뒤 조금 정신이 맑아졌다. 우해에게 잡혀 간 산단화는 어찌 되었을까. 그 사이에 혹시라도 잘못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산단화와 그녀의 아비 현덕 노인의 말을 따라준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덕 노인이 세 해가 지난 다음에 오라고 이야기했을 때 좀 더 설득을 하던가, 아니면 한 해 쯤 뒤에라도 찾아가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섰더라면 이런 생이별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 현덕 노인이 세 해를 말한 것은 어쩌면 완곡한 ‘거절’이었을 수도 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약조를 하고 떠난 것 자체가 어리석은 판단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사부는 한 동안 억념에 잠긴 채 복잡한 심사에 젖어 있었다. 그런 사념의 틈새를 비집고, 뼈가 시리도록 아픈 그리움이 사무쳐 왔다. 지소의 얼굴이기도 하고, 산단화의 얼굴이기도 한 화사한 여인의 얼굴이 눈앞에 사뭇 아른거렸다. 예전 실직주에 있을 적에는 이럴 때마다 그녀를 보기 위해 휭 하니 말을 타고 달려갔건만.... .

날이 밝아올 기미를 미처 보이지 않는 신 새벽, 이사부는 결국 답답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거소를 지키던 호위 군사들이 놀라서 따라 나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다녀올 것이다. 번거롭게 하지 마라.”

이사부는 호위 군사들에게 그렇게 이르고는 말 잔등에 올랐다. 동해 바다를 끼고 아래쪽으로 힘차게 달려 내려가는 동안 답답한 가슴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소금냄새가 풍기는 새벽 바닷바람은 폐부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해변을 한참 동안 달려 내려가던 중에 날이 훤하게 새는 듯하더니, 동해 바다 끝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사부는 말을 멈추고 돌아서서 태양의 출산을 위해 진통하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언제 보아도 일출은 장관(壯觀)이다. 맨 처음 바다 끝에서 희미하게 솟아오른 선홍색 핏기는 점차 배면을 넓히면서 옆으로 퍼져간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하얀 머리가 동그랗게 솟아오르면 붉은 빛은 물길을 달려와 길고 긴 꼬리를 만든다. 이윽고 해는 물빛에 어리어 커다란 동그라미였다가, 이내 표주박처럼 가운데가 홀쭉해진다. 그러던 끝에 어느 틈엔가 태양은 아래 위 쌍둥이로 변한다. 그렇게 갈라진 해는 점점 더 사이가 벌어지고, 아래로 처진 해는 서서히 먼 바다위에 부서져 산산이 흩어진다.

환상의 빛을 흩뿌리며 펼쳐지는 일출을 바라보던 이사부의 가슴속에 또다시 아련한 그리움이 가득 차올라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다시 말고삐를 움켜 다잡고 양발을 굴러 해변을 달렸다.

해리현 근처 산단화가 살던 맹방마을은 변함없었다. 바다를 삶터로 여기고 사는, 저마다 생업에 바쁜 동네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다. 길을 비키고 나서 흘끗 바라보거나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제 갈 길을 갔다. 산단화가 살던 촌주의 집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사부는 촌주의 집을 한 바퀴 휘둘러보고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소녀 역시 군주님을 마음에 담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신분의 차이가 지엄하고 또 지엄하니 어찌 함부로 용기를 내겠나이까....마치 그날 그 때처럼 산단화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사부는 깊은 한숨을 지으며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고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소녀에게도 얼마든지 군주님을 따라나서고 싶은 한 마음이 있나이다. 하지만, 저 역시 아비를 두고 떠나서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숙명이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부디..... 산단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아아 꿈이로구나. 아니, 진정 이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구나. 이사부는 머리를 움켜쥐고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다음날 아침 이사부는 자가곡 조선장으로 나갔다.

조선장에는 출정 중에 우산도 앞바다에서 상한 전선들을 수리하는 손길이 바빴다. 크게 출렁거리는 바다 위에서 파도를 견디느라고 그렇게 되기도 했겠으나, 전선끼리 서로 부딪치면서 갈라지고 부서져서 손을 봐야 할 곳들이 적지 않았다.

“군주님께서 기별도 없이 어찌 이렇게 친히 나오셨나이까?”

조선장을 지키고 있던 직삼이 황급히 달려왔다.

“조선장과 연무장을 한 바퀴 둘러볼 참이다.”

“예. 그러면 소장이 모시겠나이다.”

이사부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나 혼자 조용히 둘러보고 다닐 터이니 아장은 소임에 전념하라.”

직삼은 그래도 어찌 그러느냐는 눈빛을 한 채로, 고개를 숙여 복종의 예를 갖추었다. 이사부가 서두르던 발길을 세우며 새삼 생각이 난 듯 직삼에게 말했다.

“삼동이 닥치면 작업이 지난할 것이니, 다그쳐서 중한 일부터 미리 마쳐놓고 겨우내 서서히 마무리해가야 할 것이다.”

“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직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조선장은 다시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는 듯 했다. 새 전선을 짓기 위해 들여온 목재들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고, 목수들의 손길도 제법 신명이 붙어 있었다.

조선장을 다 둘러본 이사부는 해변 연무장으로 갔다.

연무장에서 훈련을 하는 병사들 역시 우산도 앞바다에서의 악몽을 많이 씻어낸 모습으로 눈빛과 몸놀림이 살아나고 있었다. 이사부는 다시 뭔가 조금씩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 현실에 안도했다.

처마 끝을 스치고 불어온 바람의 갈기에 겨울 냄새가 더욱 짙어져 가고 있었다.

-연재 10회로 이어집니다-

<註>

* 교령술(交靈術, 소환召還, 외부의 귀신이나 정령, 동물 등과 영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능력) * 오구굿(사령제死靈祭, 진혼제鎭魂祭) * 수망굿(넋건지기굿) * 화랭이(무부巫夫, 양중兩中, 남자 무당도우미) * 죽람(竹籃, 대나무 바구니) * 예국(濊國, 강릉 일원에 있던 소국) * 파조국(波朝國, 울진 지방에 있던 소국)

[제 3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