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안 휘 / 그림:문 악 보

제6장- 해후(邂逅)

 6.3 사자 똥

“그간 어디를 다녀오셨는지는 몰라도 안색이 좋지 않으시옵니다. 고생을 많이 하신 듯 창백하오니 기력부터 회복하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주청입구에서 이사부를 맞은 아장 직삼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사부의 용태를 살피며 말했다.

  여러 날 자리를 비웠음에도 주청은 별 문제가 없었다. 전선(戰船)을 제작하는 작업이나 병사들을 훈련하는 일 또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뱃길은 그런대로 순탄했다. 배를 부리는 우직의 수하들이 워낙 능숙하여 어떤 상황에도 빈틈없이 잘 대처했다. 장구한 세월 배를 띄우며 살아온 자들이라 그런지 돛과 노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다.

  울릉도 예선창 포구를 떠나온 지 이틀 남짓 만에 뭍에 도착한 다음 이사부는 명진에게 일러 고마움의 표시로 은수저와 머릿기름 등 비상으로 남겨 둔 물건들을 우직의 수하들에게 모두 내주었다.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하던 그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 물건들을 받아갔다.    

  임지 하슬라주로 돌아온 이사부는 사골을 고아 쑨 죽으로 기력을 보충하며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피로가 거의 다 풀렸다싶을 즈음부터 이사부의 뇌리에 다시 산단화의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찌 되었을까. 제발 살아있어야 할 터인데.... . 이사부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토하고 있었다.

  “군주님, 들어가도 되겠나이까?”  

  직삼이었다.

  “들어오라.”

  직삼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비(侍婢)가 갑옷을 받쳐 들고 뒤따라 들어왔다. 서라벌로 가기로 한 날이었다.  

  “명하신 대로 채비를 마쳐놓았나이다.”

  이사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옷을 챙겨 입었다. 시비가 옷 입는 것을 거들었다.  

  “알았다. 그건 그렇고..... 작정한 대로 전선을 다 지으려면 얼마나 시일이 더 걸리겠느냐?”

  “넉넉잡고 달포면 충분할 것 같사옵니다.”

  “달포라.... . 그런데, 제작이 완료된 배에 보완할 요소가 있다.”

  “무엇인지 하명하소서.”

  “공격선 선두(船頭)와 선미(船尾)에 박달나무 목판을 덧대어야겠다.”

  “무슨 연유라도 있사옵니까?”

  이사부의 뇌리에 우산도 골계 포구에서 본 우산국 군선들의 투박한 외양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적국의 군선들이 충돌전투에 유용하도록 지어졌으니, 우리 전선을 더욱 튼실하도록 보충해야겠다는 판단이니라.”

  “그러하나이까? 아군의 배도 돌파전(突破戰)에 강하도록 짓고 있지만, 군주님의 의중이 그러하시니 명대로 전선의 앞뒤를 보강하겠나이다.”

  “병사들의 훈련은 이제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느냐?”

  “지난 해 출병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하게 단련돼 있나이다. 특히 해상에서 견디는 힘이 놀랍도록 향상되어서 웬만한 풍랑에도 잘 견디도록 연병(練兵)이 충분하나이다.”

  “아장이 애를 많이 쓰고 있구나. 내 이번에 폐하를 뵙고 온 연후에 특별훈련을 통해 병사들의 조련을 마무리할 것이다.”

  “알겠나이다. 철저히 준비하겠나이다.”

  갑옷을 다 챙겨 입은 이사부는 숙소를 나서 주청 앞뜰로 나왔다. 호위 군사들이 길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말들을 살펴보았다. 울릉도에서 가져 온 진주와 수달피, 향, 건오징어 등이 들어있는 죽람(竹籃)을 등에 실은 말도 보였다.

  말 잔등에 올라 막 길을 떠나려고 하던 이사부가 뭔가 생각이 난 듯 직삼을 가까이 불렀다. 이사부는 직삼에게 귓속말처럼 은밀한 목소리로 일렀다.

  “손재주 좋은 자들을 시켜서 주먹만 한 크기의 목각남근들을 깎아 모으라고 이르라.”

  직삼이 웬 뜬금없는 말인가 하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목각남근이라 하셨나이까?”  

  “그렇다. 나무를 남근 모양으로 깎아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준비하라고 지시하라.”

  “알....겠나이다.”

  직삼은 군주가 왜 이상한 명령을 내리는지 미심쩍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 머뭇머뭇 대답했다. 이사부가 그런 기색을 이내 살펴내고는 잘라 말했다.

  “그게 왜 필요한 지는 묻지 말라. 때가 되면 용처를 일러줄 것이니.”

  “예. 알겠나이다. 분부 받잡겠나이다.”

  직삼은 그제야 흔쾌하게 명을 받았다. 장군이 무슨 일이든 설마 허투루 일을 시키기야 하랴 싶은 마음이 드는 눈치였다.

  이사부는 말고삐를 힘차게 당겨 호위 군사들과 함께 서라벌로 향했다.      

*

  “네가 울릉도엘 직접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그곳에 잠입하여 지세와 민심을 두루 살펴보고 왔나이다.”

  용상의 왕은 큰 몸을 앞뒤로 흔들며 이사부 장군의 모험을 기특해하는 마음과 궁금증이 뒤 섞인 눈빛으로 굽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왕의 용태가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 워낙 노령인데다가, 나라를 위한 노심초사가 깊은 분이니 심기가 평안한 날이 많지 않은  탓이리라.... .  

  “그래, 그곳 형편은 어떠하더냐?”

  “울릉도는 우선 지세가 너무나 험난하여 섬 자체가 난공불락의 요새였사옵니다. 배를 갖다 댈 공간마저 찾기 어려울 만큼 형세가 기묘하였나이다.”

  왕은 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앞으로 숙여 귀를 세웠다.

  “그래? 그 섬이 그렇게 험준하단 말이지?”

  “그러하였나이다. 게다가 그곳 사람들과 병사들은 배를 부리는데 능숙하고, 해전에도 강한 듯 했사옵니다.”

  “거민들은 모두 몇이나 되던고?”

  “진한의 소국들과 비슷한 규모로서 모두 합하여 일천여 호에 못 미치는 것 같았사옵니다. 그 인구는 삼천 오백 명을 못 넘기는 듯 했고, 군사규모는 일천여 명 정도로 파악되었나이다.”

  “말은 통하더냐?”

  “예. 그들의 조상이 대개 하슬라주나 실직주에서 건너간 연유로 사용하는 말이 우리와 다르지 않았나이다.”  

  “거기 왕을 참칭한다는 우해라는 자는 어떠하던고?”

  “우해라는 자는 용력이 대단한데다가 술법까지 구사하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사옵니다.”

  “술법까지 구사해? 그래 그 놈에게 무슨 재주가 있더냐?”

  “소장이 겪고 들은 바로 그 우해라는 자는 해귀(海鬼)를 충동하고, 조류(鳥類)들을 상당히 부리는 수준의 높은 술법을 구사하는 자였사옵니다. 지난 번 일차 출병에서 아군이 곤란을 당해 물러선 해괴한 변고들도 바로 그 자의 요술 때문이었던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왕이 몸을 일으켜 세워 뒷짐을 지며 으흠 하고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  

  “그래? 그 자에게 그런 잔재주가 있단 말이지?”

  “그러하나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의 술법을 넘어서는 일이 관건이 될 것 같사옵니다.”

  “그 우해라는 자의 요술을 꺾어 넘길 묘안은 찾았느냐?”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사오나, 소장에게 몇몇 복안이 있나이다.”

  “다시 출병하면 승산이 있다는 말이더냐?”

  “예, 폐하. 그 어떤 술법도 허점이 있는 법이오라, 곧 그의 재주를 타파할 묘책을 찾아낼 것이옵니다.”

  “그러하냐.”

  “예. 그러하옵고, 우산국에는 뜻밖에도 왜인들이 들어와 있었나이다.”

  ‘왜인’이라는 말에 왕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왜인이라니? 어찌하여 그곳에 왜인들이 들어와 있다는 말이냐?”

  “우해라는 자가 왜국 대마도 도주의 딸을 왕비로 삼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 하옵니다.”

  “대마도주의 딸을 왕비로 삼아? 괴이한 일이로고.”

  “그러하옵니다.”

  왕은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말을 가다듬었다.  

  “왜인들이란 본시 노략질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반도(半島)를 침략할 의도를 내비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굳이 울릉도에 들어온 데는 필시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다.”

  “소장은 그들이 울릉도를 교두보 삼아 반도를 침탈할 목적으로 그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옵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우산국을 복속하는 일이 화급치 않을 수 없도다.”

  왕은 그쯤에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단호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신라의 대업을 생각하면 우산국 정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과업이다. 고구려와 말갈의 뱃길 침투를 막는 것은 물론, 왜구의 출몰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데도 동해를 장악하는 일은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과제임을 그대도 익히 알고 있을 터. 이사부 장군은 하루라도 빨리 울릉도를 점령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다시 출정하라.”

  “소장, 폐하의 존명(尊命)을 받자와 하루 속히 출전채비를 마치고 출병하여 반드시 우산국을 복속하겠나이다.”  

  이사부는 왕을 향해 큰 절을 올린 뒤 왕궁을 물러나왔다.

  왕궁을 나온 이사부는 곧바로 본가에 들러 모친을 만났다.

  “어머님. 그 동안 강녕하셨나이까?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시옵니까?”

  못 보던 사이에 모친은 얼굴에 주름살이 부쩍 늘어 있었다.

  “그래. 나는 괜찮다. 잘 지냈느냐?”

  “예. 소자 무탈하게 지내고 있사옵니다.”

  이사부의 모친은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아들의 용태를 살폈다.    

  “네 몸에 수심기가 가득 끼어 있구나.”

  모친은 원래부터 상대방의 심중을 꿰뚫어보는 상당한 직관력을 갖고 있었다. 눈이 어두워진 뒤 그런 감각은 오히려 더 예민해진 듯 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들의 흉중에 쉽게 풀지 못하는 매듭이 있음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소자는 괜찮사오니 심려 마시옵소서. 어머님.”

  모친은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짯짯이 살폈다.

  “우산국 정벌 대업이 여의치 않다 들었다.”

  “예. 그러하오나 곧 해법을 찾을 것이옵니다.”

  “그래야지. 암, 그래야하고 말고..... .”

  모친은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골똘한 표정으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경천선사를 만나 보거라.”

  “예? 스승님을요?”

  “그렇다. 요즘 내 꿈에 경천선사께서 여러 차례 나타나셨다.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었으나, 뭔가 암시를 주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네가 찾아뵙고 혜안을 청해 보거라.”

  귀가 번쩍 띄었다. 아아,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순간 이사부는 자신이 그 동안 스승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소도제단(蘇塗祭壇) 소년무사 시절부터 이사부에게 나아갈 길을 열어 준 스승 경천선사야말로 난제를 풀어줄 가장 큰 지혜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어른이었다.  

  “알겠사옵니다. 스승님을 찾아뵙고 지혜를 구하겠나이다.”

  “그래. 한 시가 급한 나랏일에 앞장선 사람이니 여기 이렇게 사사로이 지체할 이유란 없을 것이다. 모자(母子)간에 서로 무탈한 줄 알면 됐으니, 시간 허비하지 말고 바로 떠나거라. 선사께서는 동악을 떠나 석병산(石屛山)에 거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우선 경천선사부터 찾아뵈어라.”

  “귀로에 석병산에 들어 스승님을 배알하겠나이다.”

  그때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돌연 말머리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폐하를 뵈오니 용태가 어떠하시더냐?”

  “예전 같지는 않으신 것 같았사옵니다. 적잖이 쇠하신 듯이 보였사온데.... .”

  “그렇다. 폐하의 연경(年庚)이 이제 높디높다보니 여전하지 않으시다는 말이 자주 들려오고 있다.”

  “그러하옵니까?”

  “그래서, 서라벌의 공기도 많이 흔들리고 있는 듯하구나.”

  “어찌 달라지고 있사옵니까?”

  “폐하의 원자이신 원종 왕자가 이제는 왕위를 계승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왕족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하옵니까?”

  “그렇구나. 이럴 때일수록 네가 더욱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충심을 지켜야 하느니라.”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래. 모쪼록 자중 자애해야 할 것 같구나.... . 먼 길 가야 할 터이니 이제 어서 가 보아라.”  

  이사부는 모친에게 큰절을 올리고 서둘러 본가를 벗어났다.

*

  하슬라로 돌아오는 길에 이사부는 석병산으로 향했다. 서라벌에서 수소문한 바로는 스승 경천선사는 석병산 골짜기 학소대(鶴巢臺)라는 곳에 기거하고 있다고 했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산천은 봄빛을 한껏 적셔내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아지랑이도 벌 나비와 함께 봄꽃을 피우는데 기운을 보태고 있음이 틀림없으리라..... .

  문득 실직주 군주가 되기 전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을 복속하여 추화군(推火郡)을 설치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전공(戰功)에 감격한 왕은 이사부의 벼슬을 크게 승차시켜 실직주를 맡겼다.

  미리미동국은 인접 가야국의 비호 아래 오랫동안 신라국의 서남부를 집적대며 괴롭히고 있었다. 그 해 군대를 이끌고 미리미동국과 맞닿은 국경에 도착해보니 적국의 경계가 삼엄했다.

  이사부는 며칠을 궁리하던 끝에 신라 네 번째 임금인 탈해(脫解) 이사금 때 있었다는 변관 거도(居道)의 위계를 떠올렸다. 거도는 마숙놀이를 가장하여 적국의 경계심을 늦춘 다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을 협공하여 병탄했다.

  이사부는 우선 거도의 위계를 흉내 내어 군사들에게 마숙놀이를 시켰다. 신라국 군사들은 미리미동국 군대가 잘 보이는 지역에서 한 동안 매일같이 소규모로 말 타기 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적군들이 긴장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윽고 그냥 단순한 오락쯤으로 여기고 마음을 놓는 기미가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부는 기병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말 타기 놀이를 하는 척 하다가 질풍노도처럼 적진으로 밀고 들어가 미리미동국을 기습 점령했다. 그 전공으로 인해 약관 열아홉 살의 청년장수 이사부는 장군 칭호를 얻으며 서라벌에서 이름을 떨쳤고, 실직주 군주로 임명됐다.

  그렇다. 우산국 정벌에서도 고도의 위계가 필요할지 모르겠구나.... 이사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만큼 모습을 드러낸 기암(奇巖)이 웅장했다. 석병산은 먼발치에서 바라보이는 기암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때마침 만산에 꽃이 피고 벌 나비가 무수한데다가 풀 나무들도 무섭도록 푸르러 산은 한껏 싱그러웠다.

  석병산 외곽 두수람과 먹구등 근처에서 두어 차례 전투를 벌인 적은 있지만, 주방계곡 안으로 들어가 본 기억은 없었다. 이사부는 적선(積善)으로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고 나아가다가 오른 쪽 석병산으로 접어들었다.

  인적이 워낙 드물어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노루귀처럼 생긴 기암이 저 만큼 보이는 곳에서 가까스로 중늙은이 나무꾼 한 사람을 만났다.

  “말 좀 묻겠소. 저기 저 석병산 학소대로 가자면 어느 길로 가야 하오?”

  이사부의 질문에 나무꾼은 땔나무가 가득 실린 지게부터 허둥지둥 내려놓았다.

  “학...학소대로 간다고 하셨습니까요?”

  나무꾼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갑옷을 입고 말을 탄 이사부와 호위 군사 일행을 두려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하오. 학소대로 들어가는 길이 어느 방향인지를 알고자 하오.”

  다리가 짧은 나무꾼은 대답대신 아장바장하는 잰 걸음걸이로 앞장을 서며 말했다.

  “소인이 산길 입구까지 길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요.”

  “그래주시겠소?”

  이사부는 반쯤은 달리기를 하듯 서둘러 앞장서는 나무꾼을 따랐다.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바라보니 기암은 기이하게 생긴 자태를 더욱 뽐내는 듯 했다.

  “저기 보이는 저 주방계곡 길로 접어들어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곧장 거슬러 올라가시면 됩니다요. 한참 올라가다가 폭포에 닿기 전, 물이 휘돌아 흐르는 기괴한 암석들이 나타나는데 그 곳이 바로 학소대라는 곳입지요.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으니 들기가 수월치는 않을 것입니다요.”

  나무꾼은 여전히 두려운 낯빛을 감추지 못하면서 몸을 조아렸다.

  “이리 자세히 길을 일러주니 고맙소.”

  “아닙니다요. 별 것도 아닌 일이옵니다요.”

  나무꾼은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는 거의 절을 하다시피 허리를 굽히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기암을 왼 쪽 편 저만치에 두고 계곡으로 한참 접어들었을 즈음, 협곡이 더욱 깊어지면서 우마가 들어갈 길이 끊겼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말들과 함께 기다려라.”

  이사부는 말에서 내리며 호위 군사들에게 일렀다. 호위대장이 말에서 따라 내리며 말했다.

  “험로인 듯 하온데, 군주님 혼자서 괜찮겠나이까?”

  “괜찮다. 걱정 말고 이곳에서 쉬고들 있거라. 혼자 다녀올 것이다.”

  이사부는 옆구리에 찬 환두대도를 추스르며 계곡 위쪽으로 올랐다.

*

  주방계곡은 점입가경(漸入佳境) 그 자체였다.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오묘한 풍치를 드러냈다. 사람의 손으로 깎으라고 해서는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할 희한한 기암괴석들이 즐비했다.  

  계곡에서 걸어 오를만한 공간을 찾아서 발을 내딛는 일부터 여의치 않았다. 한참을 오르다가 나아갈 길이 끊겨서 되돌아오길 수차례 거듭했다. 그러던 끝에 바위 언덕을 흘러 넘거나 혹은 틈새로 흐르거나, 우멍하게 파진 커다란 바위웅덩이에 옥빛으로 고여 흐르는 물빛이 황홀비경을 만들고 있는 장소에 어렵사리 이르렀다. 아마도 이쯤 어딘가가 스승께서 계신다는 학소대일 것이다...이사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방을 살폈다.

  “네가 이곳엔 웬 일이더냐?”

  눈앞에 나타난 절벽이 하도 기괴하여 잠시 감탄을 하고 서있을 즈음, 어디선가 스승 경천선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왔다. 깜짝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어디인지를 찾았으나 가늠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스승님을 뵙고자 부러 찾아왔사옵니다.”

  이사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또다시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껄껄껄 하는 호탕한 경천선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는 협곡 안 바위들을 웅 웅 울리면서 긴 메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잠시 뒤, 누군가가 지팡이로 이사부의 어깨를 툭툭 내리쳤다.  

  “이사부야. 오랜만이로구나.”

  등 뒤에서 스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서니 촘촘히 기워 만든 남루한 가사를 걸친 경천선사가 바로 코앞에 서 있었다. 천년 묵은 멧돼지 같은 인상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반질거리는 정수리. 옆머리에서 자라나 허리춤까지 흘러내린 허연 두발.... 여전히 맨발에다가 검게 탄 얼굴로 눈부신 흰 수염을 날리며 환하게 웃고 서 있는 선사의 양쪽 어깨 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화려한 빛깔의 새들이 오구구 앉아 있었다. 이사부는 얼른 스승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그간 기체 안강하셨사옵니까?”

  “나야 이 산 속에서 산천초목과 온갖 들짐승 날짐승들과 함께 벗하여 노닐고 있으니 아무 탈도 없다만, 보아하니 네 심상이 불안정하기 짝이 없구나.”

  스승의 날카로운 눈망울이 이사부의 온몸을 훑어 살피고 있었다.

  “예. 난관에 부딪쳐서 노심초사에 빠져 있사옵니다.”

  “그래? 무슨 일이 그렇게 안 풀리기에 번민이 깊은 것이냐?”

  선사가 앞쪽 바위 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들은 이따금씩 날개를 움찔거릴 뿐 날아오르지 않았다.

  “폐하로부터 우산국을 복속하라는 명을 받고 출정하였으나, 그 섬의 왕인 우해라는 자의 술법에 막혀서 나아가지 못하고 패퇴하였나이다.”

  “그래? 그런데 그 우해라는 자는 어떤 술법을 구사하더냐?”

  “그 자는 해귀를 동원해 바다를 들썩거리는 장난으로 뱃길을 막고, 섬에 살고 있는 온갖 새들을 부려 병사들을 공격하는 따위의 재주를 부리는 인물이옵니다.”  

  “해귀라....그리고 새를 동원하여 병사들을 공격한다?”

  “그러하옵니다.”

  이야기를 듣자 선사는 예의 그 껄껄대는 소리로 한참을 길게 웃었다.

  “그 자가 어디서 잔재주를 좀 익힌 모양이로구나.”

  “해귀를 움직이는 일도 그렇지만, 새들을 부려 병사들을 공격해오는 일은 도무지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난제이옵니다.”

  선사가 잠시 말을 끊고 눈썹을 들썩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흰 수염이 더욱 눈부신 빛을 발했다.  

  “예서 잠시만 기다리거라.”

  선사는 이사부에게 기다리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는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이 암벽 한쪽 가녘으로 갔다. 그리고는 돌 틈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넣고는 팔을 당겨 몸을 부드럽게 솟구쳐 올리면서 양손 양발을 모두 동원해 암벽을 타고 올랐다. 어깨에 앉아 있던 형형색색의 새들이 푸득푸득 하고 날아 암벽 위쪽으로 먼저 올라갔다.

  암벽을 타고 오르는 스승의 모습은 마치 네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험산을 누비는 백호 같았다. 선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열댓 길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암벽을 타고 올라 그 위로 사라졌다.

  이사부는 암벽을 간단히 오르는 스승의 모습을 감탄하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바위계곡을 세로 질러 내려오는 물소리가 새삼 낭랑하게 들렸다. 이곳이 바로 선계(仙界)로구나. 이사부의 눈에 기이한 바위하며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옥 같은 물빛이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선사가 다시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선사는 뭔가가 잔뜩 담긴 커다란 자루를 두 개나 등에 지고 암벽을 가뿐가뿐 내려왔다.

  “자루에 담긴 것이 무엇이옵니까?”

  이사부의 물음에 선사는 비식하니 웃음을 머금었다.

  “똥이다.”

  “예에? 똥이라 하셨습니까?

  “그래...똥은 똥이로되 사람 똥이 아니라 사자의 똥이니라. 가지고 가거라. 그런데 너는 사자의 모습을 본 일이 있느냐?”

  “사자가 맹수의 왕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사오나, 직접 본 일은 없사옵니다. 다만 서라벌에서 명절 때마다 벌어지곤 하던 사자놀음에서 사자탈 형상을 보긴 했사옵니다.”

  “잘 들어두어라. 사자의 몸은 생김생김이 호랑이와 비슷하고 덩치는 황소만하다. 몸빛은 모두 누런 황금색을 띠고 있다. 얼굴모양은 콧등이 아주 높은 인간의 모습을 많이 닮았고, 콧등의 빛은 검다. 커다란 입에 아래 위 송곳니가 길고 날카로우며 눈은 위로 길게 치켜 찢어졌느니라. 특히 수놈은 목덜미에 빙 둘러 암갈색 갈기가 수북하게 나 있어서 머리가 유독 커 보이고 위협적이며 기풍이 당당하니라.”

  “사자의 형상이 진정 그러하옵니까?”

  “그렇다.”

  “그런데 이 사자의 똥을 무엇에다 쓰라고 가져가라 하시옵니까?”

  그러자 갑자기 선사는 버럭 화를 냈다.

  “야 이놈아! 그걸 내가 알면 왜 이 산 속에서 늑대하고 놀겠느냐? 어디다 쓸 것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구워먹든 삶아먹든 껄껄껄..... .”

  “그래도...... .”

  “허허...이놈이 장군이 되더니 말이 많아졌구나!”

  선사는 더욱 큰 소리로 이사부를 나무랐다. 이사부는 느닷없이 사자의 똥 두 자루를 내어주고는 화만 내는 스승의 가르침을 당장 헤아릴 길이 없었다.

  이사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경천선사는 그런 제자의 복잡한 심사를 눈치 챘는지 껄껄대고 한참을 더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자, 그럼 할일이 태산같이 많을 터이니 머뭇거리지 말고 길을 재촉해 가 보거라. ...나는 이따가 밤에 또 숲속 친구들과 노닥거려야 할 터이니, 이제부터 낮잠이나 한 숨 자 둬야겠다.”

  선사는 아-함하고 팔을 뻗어가며 길게 하품을 한 다음 휑하니 돌아섰다. 그리고는 어깨 위에 앉아있는 새들에게 ‘얘들아, 가자!’하고 소리쳤다. 새들은 마치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푸득 날아올라 암벽 위를 향했다.  

  “소인 물러가옵니다. 스승님.”

  이사부는 홀연히 돌아선 스승 경천선사 등 뒤에다가 큰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고 일어나보니, 선사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이사부는 스승이 주고 간 사자의 마른 분뇨가 가득 든 큰 자루들을 등에 지고 학소대를 빠져나왔다.

  의문으로 가득한 이사부의 복잡한 심사는 아랑곳없이 돌아 나오는 주방계곡의 깊은 봄 풍치는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운 선경(仙境)을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연재 19회로 이어집니다-

<註>

* 석병산(石屛山, 주방산周房山, 주왕산周王山)  *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 밀양 일대에 있던 고대국가)  * 마숙놀이(馬叔놀이, 일종의 말 타기 놀이) * 우시산국(于尸山國, 양산 일대에 있던 고대국가)  * 거칠산국(居柒山國, 부산 일대에 있던 고대국가)  * 적선(積善, 청송군 파천면의 옛 지명)

[제 6장 끝]